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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 온천장 탐방기

가을이 다가오니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다. 부산으로 내려온 지도 벌써 아홉 달이 지났다. 그사이 겨울, 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동래 온천장에 있는 온천탕 중 규모가 제일 큰 허♡청엘 가보기로 했다. '동래' 하면 온천이 생각나고 '동래온천' 하면 허♡청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관광지나 다름없어 혼자라 좀 어색도 했지만 동네 대중탕에 가는 셈 치면 되니까.부산에 내려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숙소 부근 지하철역에서 세 정거장 거리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무심하다 싶기도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데 이유 없는 발걸음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683년 재상이 입욕했다.' - 삼국유사 -'왕이 행차했다.' - 동국여지승람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알려진 동래온천은 여러 역사 기..

감천, 고달픈 현실 달콤한 꿈

아침에 쾌청하게 맑던 날씨가 오후 늦게부터 뿌옇게 흐려졌다. 날씨예보도 미세 먼지 '나쁨'이라고 알린다. 부산에 내려온 후로 이처럼 탁한 하늘은 처음이다. 늦겨울부터 봄철 내내 먼지 스모그 해무 등으로 혼탁했던 인천의 기억이 먼지 낀 창 너머를 내다보는 듯 흐릿하게 머릿속에 오버랩된다.일과를 마친 후 운동화로 갈아 신고 사무실을 나섰다. 탁한 공기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예정대로 비석마을과 감천 문화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중앙역에서 전철을 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부산전철 로고송을 뒤로하고 토성역에서 내렸다. '갈매기 떼 나는 곳, 동백꽃도 피는 곳, 아~ 너와 나의 부산 영원하리'토성역에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고 경사진 오르막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머리 위로 떠오른 초승달은 가장자..

[영남길 7구간] 백구 흑구와 우연찮은 동행

한양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조선의 옛길, 작년 이월 초 시작했던 영남길 걷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코스는 용인시 원삼면 독성리에서 백암면 황새울 마을까지 제7구간 구봉산길, 그리고 다시 안성시 죽산면 소재지까지 제8구간 죽주 산성길이다. 두 코스 각각 13km로 만만찮은 거리다.기흥 전철역에서 탐방길 친구들과 합류했다. 경전철 에버라인으로 갈아타고 금학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운동장-송담대 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시가 몽환적이다.노구봉 옆 경안천변에 위치한 용인공용버스터미널에서 10-4번 백암리행 버스에 올랐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버스는 승객들로 빈자리가 없는데 서로 중국말로 얘기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이 그 절반이다. 예전 진천 버스터미널에서, 또 돌아오..

[영남길 6구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

오랜만에 하늘이 본래의 제 색깔을 찾은 맑은 날이다. 야탑에서 7:35발 진천행 시외버스에 올라 백암 터미널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 백운산 줄기 위에 갓 보름이 지난 부푼 달이 어슴푸레한 얼굴로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영동고속도로 양지 IC로 내려서서 은이 성지 법륜사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을 스쳐 지난다. 백암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원삼면 독성리로 향했다. 반듯한 백암 초교 교정에 자리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동상이 가지런하다. 독성 2리에서 덜컹대는 미니버스에서 내려 영남길 제7구간을 뒤로하고 제6구간 서울방향으로 발을 옮긴다.구봉산 수정산 칠봉산 문수산 등 산군(山群)이 멀찍이 물러서서 마을과 너른 들판을 둘러싸고 있다. 물이 넉넉히 고인 들판은 풍년을 기약하는 듯하고 까치와..

[영남길 5구간] 수여선(水驪線) 옛길과 순대

경기도에서 복원한 영남길 경기구간은 총 116km 10개 구간이다. 그 가운데 미답 구간인 제1구간과 제5구간 중 제5구간을 걷기로 했다. 분당선 기흥 역에서 내려 에버랜드까지 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인운전 경전철 에버라인으로 환승했다. 높은 교각 위로 놓인 철로를 달리는 전철, 창 밖으로 절정으로 치닫는 봄이 스쳐지나고 창 안으로는 햇살이 눈부시게 들이친다. 짧은 청반바지 차림의 젊은 아가씨를 비롯해서 30여 미터 길이 객실이 젊음으로 가득하다. 서울 쪽으로 향하는 '수여선 옛길'은 양지면 남곡리를 출발해서 봉두산, 용인중앙시장, 금학천을 거쳐 용인시청까지 11.6km 거리다. '수여선 옛길'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 강점기에 여주 지역의 미곡을 송출할 목적으로 1930년 말 개통된 수원-여주 간 7..

[영남길 4구간] 용인의 진산 석성산을 걷다

영남길 제4구간 석성산길로 접어들었다. 동막과 백현이 합쳐져 생긴 동백리의 호수공원 옆 근린공원에서 시작하여 석성산을 지나 용인시청에 닿는 6km여 구간이다. 구릉지와 얕은 산야가 많은 용인은 개발의 바람이 거세다. 산자락 틈새를 비집고 파고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빌라와 아파트 군락은 하루가 다르게 산세와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다. 족히 한 계절이 지나면 모습이 달리지는 이곳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해발 471미터 석성산 정상까지는 멀지 않지만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그 이름처럼 돌로 쌓은 성처럼 산정은 거대한 바위로 된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너른 정상에 서면 영동고속도로를 비롯 사방이 툭 트여 시야가 시원스럽다. 하산은 용인시청 쪽으로 군 통신 시설이 ..

[영남길 3구간] 경기옛길, 구성현길

야탑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막 출발하려는 전철에 올랐다. '아뿔싸!' 전철이 출발하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는 것을 알았다. 모란에서 내려 반대쪽 플랫폼으로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빠름' 보다 조금은 늦더라도 '바름'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잊었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불나방처럼 우르르 몰려가는 인생들도 많다.주말 아침 전철 안 좌석은 노인들 차지고 젊은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평일 날은 출근길과 삶의 터전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렀을 터이니 주말 아침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며 느긋한 시간을 누릴 여유는 이 시대 청장년들의 당연한 권리이지 싶다.오리에서 M과 H를 만나 영남길 제3코스 탄천을 따라 죽전 보정을 지나 구성으로 향했다. 얼음 풀린 물 가에서 탄천 오리 떼는 먹이..

[영남길 2구간] 입춘에 나선 낙생역길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을 하루 앞두고 있다. 영남길 종주에 도전한 친구 M과 H가 오늘 첫 발길을 내디뎠다. 청계산 옛골에서 출발하여 제1코스 달래내길의 종점 판교까지 10여 km를 걸어온 친구들과 합류했다.금토 천변 좌측 대로를 따라 늘어선 테크노벨리의 빌딩들은 높고 세련된 모습이다. 판교에서 시작되는 제2코스 금토천을 따라 걷는 낙생역길은 탄천길로 이어진다. 탄천길을 잠시 벗어나 서현에서 점심으로 해장국집에 들렀다. 추위에 언 몸은 뜨끈한 우거짓국이 반가운 듯 반갑게 받아들인다.탄천변 물가의 버들강아지는 때 이르게 움을 틔웠다. 율동공원 저수지에서 시작해서 탄천으로 흘러드는 분당천 옆 중앙공원을 지난다. 공원은 한산 이 씨 목은 후손들의 묘역 정려 비각과 신도비각 지석묘군 등과 야외공연장 연못 정자 등..

[영남길 1구간] 달래내 고갯길 꽃잔치

집 앞 화단의 라일락이 꽃을 피웠다. 사월 어느 날 아침에 화들짝 피었다가 툭툭 허망하게 떨어지는 목련은 왠지 슬퍼 보이지만 향기로운 내음이 있는 라일락이 목련을 대신해서 위안을 준다. 조선시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최단거리 도보 노선인 영남대로, 그중 경기도 구간의 원형을 바탕으로 조성한 역사문화 도보탐방로가 영남길이다. 작년 초부터 총 116km 10개 구간을 한 두 구간씩 나누어 걸었는데, 전 구간 탐방을 끝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제5구간에 이어 마지막 제1구간을 남겨두고 있다. 영남길 퍼즐 완성까지 이젠 한 조각만 남은 셈이다. 영남길 걷기 나머지 그 한 개 구간 마무리를 위해 청계 옛골을 향해 집을 나섰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 보기에도 좋을 듯싶다는 생각이다. 매사에 끊고 맺음이 중요하니까..

지리산에 안겨서 별을 품다(V)

아홉 시경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해서 그 아랫 쪽 100여미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샘터에서 간단히 건식 식사를 하고 유평리 쪽으로 출발했다. 대피소의 하산길 등로 옆에 서있는 이정표가 대원사까지 7.7km, 대원사주차장까지 9.8km라고 알린다.이정표를 보고 등로에서 84m 떨어져 있다는 무제치기 폭포로 달려간 H는 뒤처져 따라오던 M과 B와 거의 동시에 폭포 쪽에서 되돌아왔다. H가 찍은 3단 너른 폭을 타고 내라는 폭포 동영상은 호쾌하고 시원스럽기 그지 없다.마음을 다잡고 계곡 옆으로 난 너덜길을 오르내리며 걷는 길 땀은 비오듯 쏟아지며 눈으로 흘러들어 눈물인지 땀인지 구분이 가질 않을 지경이다. 계곡은 등로 아래 멀찍이서 물소리만 요란할 뿐 좀체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 비탈길 암벽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