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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너머 관동으로

예년 여름휴가 때처럼 속초로 향했습니다. 말복 더위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휴가 여행이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버티는 아이들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제9호 태풍 레끼마는 상해 북서쪽에서 중국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지만 한반도에는 큰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경춘고속도로를 경유해서 미시령 터널을 지나는 밋밋한 코스 대신에 대관령을 넘기로 했습니다.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횡성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들며 피곤해하는 몸을 달랬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를 지나치고 대관령 IC에서 내렸습니다. 대관령 하행선 방향 휴게소는 캠핑 차량들이 연립주택처럼 줄지어 서있습니다. 태백산맥을 넘으려던 안개와 비는 800미터가 넘는 능선에 가로막혀 산과 도로를 뒤덮..

해공과 비 내리는 호남선

서하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시작된 찜통더위를 피해서 또는 갑갑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는 심사였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서하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칠사산 줄기가 길게 뻗어 내리며 산자락을 펼쳐 놓았고, 그 앞으로 흐르는 경안천이 팔당호로 안겨들기 전 너른 평야를 껴안고 휘돌아 흐르는 지형입니다. 범상치 않은 수려한 지세가 인물을 낳는다고 했던가요. 서하리는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1894~1956)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문교부장 등 요직을 맡았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제헌국회의원과 국회의장에 피선되기도 했습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그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전주 유세를 위해 호남선을 ..

카테고리 없음 2024.09.03

바다 빛 여름 속초에서

일상을 탈출하여 속초엘 왔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무거운 구름이 낮게 드리웠고 파도는 연신 해안으로 밀려옵니다. 일출을 보리라는 기대와 바람은 접었습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바이 마을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속초항 옆에 달항아리처럼 육지로 들어와 안긴 청초호를 바다와 갈라놓으며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마을, 아바이 마을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청호동입니다. 6.25 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귀향을 위해 임시로 거처하던 곳입니다. 속초항 남쪽 등대로 가는 방파제 초입에 하나호 선장 유정충의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제주도 서남방에서 침몰한 하나호 선장으로 선원 21명을 구하고 자신은 끝내 배와 최후를 함께 했다니 살신성인의 본보기입니다. 금강대교 위 인도를 걸어서 육지 쪽에서 건너편의 아바이 마을로 건너갔습..

카테고리 없음 2024.09.03

부산에서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그칠듯 그치지 않고 얇은 빗줄기를 흩뿌리고 있다. 점심을 서둘러 들고 우산을 들고 세관 후문을 나섰다.조간신문 한켠에 실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 명작 부산 찾는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었다. 부산미술협회가 5.17-6.17일간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미켈란젤로(1475~1564)의 작품 '메디치 마돈나' 특별전을 준비한 것이다.사무실에 접해 있는 수미르 공원 앞 건널목을 건너고 중앙역 지하도를 빠져 나왔다. 용두산 북쪽 대청로를 400여 미터 따라가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이던 근대역사관에 도착했다. 비가 흩뿌리는 평일의 작은 박물관 특별전시실엔 우리 둘 외에 노인 대여섯 분들이 전부다.전시실로 들어서자 이태리 건축가 르네상스 미술사 전문가 등이 꾸몄다는 전시장은 피렌체 메디치 ..

내동마을 연꽃과 와우정사 불심

용인특례시 처인구 내동마을의 연꽃단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남시 경계를 지나 용인시 북동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57번 지방도를 따라 문수산과 칠봉산 사이 능선을 가르는 곱등고개를 넘었다. 경기옛길 영남길 제5구간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길' 탐방 시 내동마을 법륜사 곱등고개 등을 거쳐 지나갔던 5년 전 초봄의 기억이 또렷하다. "팔월이면 연꽃이 만발한다는 내동마을 앞 너른 논에 반쯤 녹은 살얼음이 바람에 흔들린다. 물이 그득한 논, 마른 연 줄기 사이와 논두렁에서 야생 오리들이 물질을 하거나 앉아서 햇볕을 즐기고 있다. 이방인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가끔씩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볼만하다. 내동마을은 그야말로 야생오리들의 낙원이다. 마을 표지판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 늙은 버들 한그루가 여..

반구대 암각화, 고래를 찾아서

부산을 출발해서 워크숍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며 삼척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그 중간에 잠시 바람을 쏘이고 화장실에도 다녀올 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언양 휴게소에 들렀다. 산뜻한 휴게소 건물의 담벼락에 음각된 각종 고래 문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고래들을 크게 확대해서 음각해 놓은 그림이다. 실제의 암각화는 이 휴게소에서 3km여 남짓 거리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대곡천 중류 암벽에 새겨져 있다.포은 정몽주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라 조선 선비들의 성지순례 코스로도 유명했다는 반구대(盤龜臺), 1971년 동국대 탐사팀이 암각화를 발견하면서 반구대보다 암각화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고..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 오른편 부산 사하구 다대포에는 어항, 해수욕장과 함께 몰운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다대포 객사, 부산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정운을 기리는 정운공 순절비, 그리고 아름다운 일몰을 볼수 있는 몰운대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최남단 바다와 맞닿은 곳이다.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6세기 이전에는 섬이었는데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조선조 진재 김윤겸(眞宰 金允謙, 1711~1775)은 1770년에 소촌도(현 진주 지역) 찰방으로 부임했다. 그가 인근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일원과 부산의 명승지들을 둘러보고 그린 그림들을 모아 엮은 영남 기행 화첩> ..

북한산 봉우리는 몇 개 일까?

오랜만에 서울 강북 쪽으로의 산행이다. 근 한 달 만에 친구들과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목적지는 북한산이다. 주말 전철 안은 평일과 달리 헐렁하다. 전철 3호선으로 환승해서 한강을 건너고 종로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등을 지나 불광역에서 내렸다.북한산 준봉 군락 중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해발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비봉 비봉능선 문수봉 의상능선 의상봉을 거쳐 대서문 쪽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코스다.불광역과 독바위역 중간쯤 불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면 전체 71.5km 21개 구간의 북한산 둘레길 중 '구름정원길' 구간과 교차하는 족두리봉 쪽 들머리가 나온다.맑은 가을날 주말답게 들머리부터 남녀노소 산행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초입부터 가파른 능선은 거대한 암릉이다. 그 중간중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여주 여강길 트레킹

주중에 밤낮 길이가 같은 절기 춘분이 지났으니 바야흐로 야외활동 하기에도 제격인 계절이다. 일출시간에 미치지 않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이매역에서 06:32발 여주행 경강선 전철에 올랐다. 여주 여강길 11개 코스 가운데 여주전철역에서 명성황후 생가터에 이르는 제5코스를 걸어볼 요량이다. 전철은 영장산 아래 터널 등 터널과 지상을 오가며 삼동역, 경기광주역, 초월역을 차례로 지났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선 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흰 스카프처럼 흰 눈을 걸치고 있는 곤지암스키장 슬로프가 아직도 겨울이 다 물러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곤지암역과 신둔도예촌역을 지나 이천 땅으로 들어서면 대지는 툭 트여 시야가 시원스럽다. 넓은 논밭 사이에 둔턱처럼 낮은 산야가 군데군데 자리할 뿐 높은 산이란 산은 모두 아득히 멀..

민둥산 억새꽃 물결 속으로

바야흐로 10월이요 네 계절 중 가장 눈부신 가을이다. 기온이 내린 탓인지 사람들 옷차림이 제법 두터워졌다. 청량리역에서 산행 친구 세 분과 만나 며칠 전에 매진되었다는 중앙선 7:00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운길산역을 지나 한강 위 철교를 지날 때 차창 밖에는 비 온 후 웃자란 고사리 마냥 안개가 수면에서 피어오르다 말고 멈춰 서있다. 안개도시 양평은 농무에 묻혀 아직 주말 아침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차창 밖 눈썹 위 높이로 떠오른 태양은 안개에 가려 낮달처럼 말갛다.기차는 시와 도의 경계를 넘으며 안갯속을 헤치고 달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던 야스나리의 설국으로 들어가는 기차처럼.마음은 벌써 민둥산역에 내려 하얀 억새꽃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