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라 걷기 14

내동마을 연꽃과 와우정사 불심

용인특례시 처인구 내동마을의 연꽃단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남시 경계를 지나 용인시 북동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57번 지방도를 따라 문수산과 칠봉산 사이 능선을 가르는 곱등고개를 넘었다. 경기옛길 영남길 제5구간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길' 탐방 시 내동마을 법륜사 곱등고개 등을 거쳐 지나갔던 5년 전 초봄의 기억이 또렷하다. "팔월이면 연꽃이 만발한다는 내동마을 앞 너른 논에 반쯤 녹은 살얼음이 바람에 흔들린다. 물이 그득한 논, 마른 연 줄기 사이와 논두렁에서 야생 오리들이 물질을 하거나 앉아서 햇볕을 즐기고 있다. 이방인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가끔씩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볼만하다. 내동마을은 그야말로 야생오리들의 낙원이다. 마을 표지판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 늙은 버들 한그루가 여..

반구대 암각화, 고래를 찾아서

부산을 출발해서 워크숍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며 삼척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그 중간에 잠시 바람을 쏘이고 화장실에도 다녀올 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언양 휴게소에 들렀다. 산뜻한 휴게소 건물의 담벼락에 음각된 각종 고래 문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고래들을 크게 확대해서 음각해 놓은 그림이다. 실제의 암각화는 이 휴게소에서 3km여 남짓 거리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대곡천 중류 암벽에 새겨져 있다.포은 정몽주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라 조선 선비들의 성지순례 코스로도 유명했다는 반구대(盤龜臺), 1971년 동국대 탐사팀이 암각화를 발견하면서 반구대보다 암각화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고..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 오른편 부산 사하구 다대포에는 어항, 해수욕장과 함께 몰운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다대포 객사, 부산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정운을 기리는 정운공 순절비, 그리고 아름다운 일몰을 볼수 있는 몰운대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최남단 바다와 맞닿은 곳이다.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6세기 이전에는 섬이었는데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조선조 진재 김윤겸(眞宰 金允謙, 1711~1775)은 1770년에 소촌도(현 진주 지역) 찰방으로 부임했다. 그가 인근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일원과 부산의 명승지들을 둘러보고 그린 그림들을 모아 엮은 영남 기행 화첩> ..

여주 여강길 트레킹

주중에 밤낮 길이가 같은 절기 춘분이 지났으니 바야흐로 야외활동 하기에도 제격인 계절이다. 일출시간에 미치지 않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이매역에서 06:32발 여주행 경강선 전철에 올랐다. 여주 여강길 11개 코스 가운데 여주전철역에서 명성황후 생가터에 이르는 제5코스를 걸어볼 요량이다. 전철은 영장산 아래 터널 등 터널과 지상을 오가며 삼동역, 경기광주역, 초월역을 차례로 지났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선 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흰 스카프처럼 흰 눈을 걸치고 있는 곤지암스키장 슬로프가 아직도 겨울이 다 물러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곤지암역과 신둔도예촌역을 지나 이천 땅으로 들어서면 대지는 툭 트여 시야가 시원스럽다. 넓은 논밭 사이에 둔턱처럼 낮은 산야가 군데군데 자리할 뿐 높은 산이란 산은 모두 아득히 멀..

[영남길 10구간] 이천 옛길, 경계에 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하다. 경기도의 영남길 마지막 구간인 9,10코스를 걷기로 한 것이다.대합실 TV가 동해안 산불 소식을 전한다. 그저께 고성 강릉 인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어 엄청난 피해를 안긴 산불이 혼신의 진화작업 끝에 잦아들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충청과 경기의 경계에서 영남길을 출발하다.충북 음성 생극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는 곤지암 부근에서 가다 서다 하며 진행이 더디다. 한식을 맞은 주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생극 터미널에서 산성리 어재연 장군 생가까지는 5km 남짓 거리이지만 버스가 없다. 생극과 어재연 생가는 각각 충북 음성과 경기 이천시 율면에 속해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의 맹점을 탓하며 생극에서 운행 중이라는 택시 8대 중 한 대를 잡아탔다. 영남길 ..

[영남길 9구간] 죽산 성지 순례길

영남길 제10구간을 거슬러 제9구간과의 교차점인 안성시 죽산면 금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죽산면까지 9.9km는 '죽산 성지 순례길'이다. 금산교회 옆 축사를 가득 채운 크고 순한 눈망울의 소들이 먹이통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린 송아지들은 낯선 발소리를 경계하며 안쪽 벽으로 물러선다. 청풍쉼터 건너편 망이산 자락 능선으로 올라 쓰러진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허기를 달래 본다. 한적한 농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번듯한 건물의 안성ㅇㅇ 기숙학원엔 젊은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싱그럽다. 그 앞 판교 노인회관 옆에서 마른풀 태우는 연기 냄새는 향기롭다. 현풍 곽 씨 충효각이 있는 광천마을을 가로질러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화봉천에는 야생 오리 한 쌍이 정겹게 헤엄친다. 눈에 띄는 경계도 없이 이웃한 장암마을은 장군 안..

[영남길 8구간] 죽주 산성길

백암면 황새울 마을에서 영남길 제7구간 구봉산길이 끝나고 제8구간 죽주산성길이 시작된다. 사방이 툭 트인 벌판의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고 얕은 구릉을 빗겨 가고 묘목이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축사 옆을 지나고 작은 고개를 넘어섰다.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들기 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길은 용인과 안성의 경계를 넘는다.농사 준비로 바쁜 안성 삼죽면 내장리의 너른 들길을 가로질러 멀리 비봉산과 그 품에 안긴 봉정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가 깔린 경사진 길을 올라 봉정사에 들렀다가 우측 기슭을 휘돌아 해발 372미터 비봉산 정상에 올랐다. 남쪽으로 남산과의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한 죽산면 마을이 펼쳐져 있다.동쪽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236년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과의 15일간 전..

[영남길 7구간] 백구 흑구와 우연찮은 동행

한양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조선의 옛길, 작년 이월 초 시작했던 영남길 걷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코스는 용인시 원삼면 독성리에서 백암면 황새울 마을까지 제7구간 구봉산길, 그리고 다시 안성시 죽산면 소재지까지 제8구간 죽주 산성길이다. 두 코스 각각 13km로 만만찮은 거리다.기흥 전철역에서 탐방길 친구들과 합류했다. 경전철 에버라인으로 갈아타고 금학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운동장-송담대 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시가 몽환적이다.노구봉 옆 경안천변에 위치한 용인공용버스터미널에서 10-4번 백암리행 버스에 올랐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버스는 승객들로 빈자리가 없는데 서로 중국말로 얘기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이 그 절반이다. 예전 진천 버스터미널에서, 또 돌아오..

[영남길 6구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

오랜만에 하늘이 본래의 제 색깔을 찾은 맑은 날이다. 야탑에서 7:35발 진천행 시외버스에 올라 백암 터미널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 백운산 줄기 위에 갓 보름이 지난 부푼 달이 어슴푸레한 얼굴로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영동고속도로 양지 IC로 내려서서 은이 성지 법륜사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을 스쳐 지난다. 백암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원삼면 독성리로 향했다. 반듯한 백암 초교 교정에 자리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동상이 가지런하다. 독성 2리에서 덜컹대는 미니버스에서 내려 영남길 제7구간을 뒤로하고 제6구간 서울방향으로 발을 옮긴다.구봉산 수정산 칠봉산 문수산 등 산군(山群)이 멀찍이 물러서서 마을과 너른 들판을 둘러싸고 있다. 물이 넉넉히 고인 들판은 풍년을 기약하는 듯하고 까치와..

[영남길 5구간] 수여선(水驪線) 옛길과 순대

경기도에서 복원한 영남길 경기구간은 총 116km 10개 구간이다. 그 가운데 미답 구간인 제1구간과 제5구간 중 제5구간을 걷기로 했다. 분당선 기흥 역에서 내려 에버랜드까지 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인운전 경전철 에버라인으로 환승했다. 높은 교각 위로 놓인 철로를 달리는 전철, 창 밖으로 절정으로 치닫는 봄이 스쳐지나고 창 안으로는 햇살이 눈부시게 들이친다. 짧은 청반바지 차림의 젊은 아가씨를 비롯해서 30여 미터 길이 객실이 젊음으로 가득하다. 서울 쪽으로 향하는 '수여선 옛길'은 양지면 남곡리를 출발해서 봉두산, 용인중앙시장, 금학천을 거쳐 용인시청까지 11.6km 거리다. '수여선 옛길'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 강점기에 여주 지역의 미곡을 송출할 목적으로 1930년 말 개통된 수원-여주 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