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4

[영남길 10구간] 이천 옛길, 경계에 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하다. 경기도의 영남길 마지막 구간인 9,10코스를 걷기로 한 것이다.대합실 TV가 동해안 산불 소식을 전한다. 그저께 고성 강릉 인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어 엄청난 피해를 안긴 산불이 혼신의 진화작업 끝에 잦아들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충청과 경기의 경계에서 영남길을 출발하다.충북 음성 생극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는 곤지암 부근에서 가다 서다 하며 진행이 더디다. 한식을 맞은 주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생극 터미널에서 산성리 어재연 장군 생가까지는 5km 남짓 거리이지만 버스가 없다. 생극과 어재연 생가는 각각 충북 음성과 경기 이천시 율면에 속해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의 맹점을 탓하며 생극에서 운행 중이라는 택시 8대 중 한 대를 잡아탔다. 영남길 ..

[영남길 9구간] 죽산 성지 순례길

영남길 제10구간을 거슬러 제9구간과의 교차점인 안성시 죽산면 금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죽산면까지 9.9km는 '죽산 성지 순례길'이다. 금산교회 옆 축사를 가득 채운 크고 순한 눈망울의 소들이 먹이통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린 송아지들은 낯선 발소리를 경계하며 안쪽 벽으로 물러선다. 청풍쉼터 건너편 망이산 자락 능선으로 올라 쓰러진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허기를 달래 본다. 한적한 농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번듯한 건물의 안성ㅇㅇ 기숙학원엔 젊은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싱그럽다. 그 앞 판교 노인회관 옆에서 마른풀 태우는 연기 냄새는 향기롭다. 현풍 곽 씨 충효각이 있는 광천마을을 가로질러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화봉천에는 야생 오리 한 쌍이 정겹게 헤엄친다. 눈에 띄는 경계도 없이 이웃한 장암마을은 장군 안..

[영남길 8구간] 죽주 산성길

백암면 황새울 마을에서 영남길 제7구간 구봉산길이 끝나고 제8구간 죽주산성길이 시작된다. 사방이 툭 트인 벌판의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고 얕은 구릉을 빗겨 가고 묘목이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축사 옆을 지나고 작은 고개를 넘어섰다.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들기 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길은 용인과 안성의 경계를 넘는다.농사 준비로 바쁜 안성 삼죽면 내장리의 너른 들길을 가로질러 멀리 비봉산과 그 품에 안긴 봉정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가 깔린 경사진 길을 올라 봉정사에 들렀다가 우측 기슭을 휘돌아 해발 372미터 비봉산 정상에 올랐다. 남쪽으로 남산과의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한 죽산면 마을이 펼쳐져 있다.동쪽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236년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과의 15일간 전..

[영남길 6구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

오랜만에 하늘이 본래의 제 색깔을 찾은 맑은 날이다. 야탑에서 7:35발 진천행 시외버스에 올라 백암 터미널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 백운산 줄기 위에 갓 보름이 지난 부푼 달이 어슴푸레한 얼굴로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영동고속도로 양지 IC로 내려서서 은이 성지 법륜사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을 스쳐 지난다. 백암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원삼면 독성리로 향했다. 반듯한 백암 초교 교정에 자리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동상이 가지런하다. 독성 2리에서 덜컹대는 미니버스에서 내려 영남길 제7구간을 뒤로하고 제6구간 서울방향으로 발을 옮긴다.구봉산 수정산 칠봉산 문수산 등 산군(山群)이 멀찍이 물러서서 마을과 너른 들판을 둘러싸고 있다. 물이 넉넉히 고인 들판은 풍년을 기약하는 듯하고 까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