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6

북한산 봉우리는 몇 개 일까?

오랜만에 서울 강북 쪽으로의 산행이다. 근 한 달 만에 친구들과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목적지는 북한산이다. 주말 전철 안은 평일과 달리 헐렁하다. 전철 3호선으로 환승해서 한강을 건너고 종로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등을 지나 불광역에서 내렸다.북한산 준봉 군락 중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해발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비봉 비봉능선 문수봉 의상능선 의상봉을 거쳐 대서문 쪽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코스다.불광역과 독바위역 중간쯤 불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면 전체 71.5km 21개 구간의 북한산 둘레길 중 '구름정원길' 구간과 교차하는 족두리봉 쪽 들머리가 나온다.맑은 가을날 주말답게 들머리부터 남녀노소 산행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초입부터 가파른 능선은 거대한 암릉이다. 그 중간중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민둥산 억새꽃 물결 속으로

바야흐로 10월이요 네 계절 중 가장 눈부신 가을이다. 기온이 내린 탓인지 사람들 옷차림이 제법 두터워졌다. 청량리역에서 산행 친구 세 분과 만나 며칠 전에 매진되었다는 중앙선 7:00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운길산역을 지나 한강 위 철교를 지날 때 차창 밖에는 비 온 후 웃자란 고사리 마냥 안개가 수면에서 피어오르다 말고 멈춰 서있다. 안개도시 양평은 농무에 묻혀 아직 주말 아침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차창 밖 눈썹 위 높이로 떠오른 태양은 안개에 가려 낮달처럼 말갛다.기차는 시와 도의 경계를 넘으며 안갯속을 헤치고 달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던 야스나리의 설국으로 들어가는 기차처럼.마음은 벌써 민둥산역에 내려 하얀 억새꽃 밭..

지리산에 안겨서 별을 품다(IV)

산행 세째 날이다. 잠이 깨어 시각을 보니 여느날보다 이른 자정이 조금 지났다.화장실을 다녀오고 복도로 에어매트를 들고 나와 미리 접어 두었다. 후끈하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대피소 실내와 달리 바깥은 한기가 느껴질만큼 서늘하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다. 스마트 폰으로 담아보려던 생각을 접고 눈을 크게 열고 마음에 담아 본다.일출 시각은 05:40경이지만 새벽 세 시 반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 장터목 대피소를 출발해서 1.7km거리 천왕봉으로 향한다. 랜턴으로 등로를 밝히며 제석봉으로 오르는 걸음이 가파른 비탈에 익숙해졌는지 덤덤히 받아들인다.몇몇 산객들도 눈 띄는데 배낭을 짊어진 산객이 있는가 하면 스틱만 짚고 오르는 산객도 있다. 많은 산객은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나 대원사 쪽으로 내려가는 험로를 피해 ..

지리산에 안겨서 별을 품다(II)

반야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이 계속 이어진다. 등로 옆으로 고사목들이 얼굴에 홍조를 띤 시골 처녀처럼 생긴 동자꽃 군락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광경이 스쳐 지난다. 산정에서 내려오는 두 젊은 여성 산객에게 산정 위로 비둘기 날개처럼 펼쳐진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고 발길을 재촉했다.높게 떠오른 태양은 뜨겁고 달아오른 몸은 땀이 비오듯 하지만 수목 사이로 난 그늘진 등로를 지날 때면 선선함이 느껴진다. 반야봉 정상은 그 턱밑에 가파른 나무 계단을 내놓으며 산객을 맞아준다.복슬강아지의 꼬리처럼 생긴 산오이풀이 반기는 산정의 저쪽 끝에서 반야봉 정상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등로 쪽으로 무채색 구름이 노고단을 넘어서 천군만마처럼 능선을 집어삼키며 엄습해 와서 제3봉인 반야봉은 넘보며 눈 아래 운..

팔봉산 어게인

장마의 끝자락이다. 홍천의 팔봉산 산행을 하기로 의기투합한 친구들이 서울 동쪽 끝에서 몰아온 차에 하남에서 올라탔다. 산과 구름이 어우러져 두루마리 수묵화를 펼쳐 놓은 듯한 장관에 감탄하며 미사대교를 건너서 경춘고속도로로 들어섰다.잠시 들른 가평휴게소는 너른 주차장이 빈자리가 없이 차량으로 가득 찼고 휴게소 건물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인파로 북적인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나 보다. 시간 반 만에 도착한 팔봉산관광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했다. 나는 M과 함께 오 년 전에 팔봉산 산행을 한 번 했었고 H와 B는 처음이라고 한다. 천변 도로 옆으로 선홍빛 꽃 봉오리를 활짝 피운 무궁화가 도열해 있고, 너른 자갈밭이 펼쳐진 강변에서 구명복 차림의 사람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지리산에 안겨서 별을 품다(I)

연일 기온이 30도 중반에 육박하여 폭염주의보 알림 메시지가 수시로 날아든다. 지리산 산행 대장정을 위해 21:30경 집을 나섰다. 지리하게 머물던 장마전선은 물러갔고 한 두 시간 전부터 가늘게 내리던 비도 그쳐 다행이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동서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동행할 친구들도 목동, 화정, 일산에서 각각 출발한다는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약 한 달 전에 친구들과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산행 날자를 잡았었다. 이번 산행의 코스는 성삼재를 출발하여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 능선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서는 이박삼일 일정의 소위 '성대종주' 산행이다.지리산 첫 종주산행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학 친구들과 함께 화엄사를 출발해서 중산리로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터목에서 추위와 싸우며 야영을 했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