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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 원시의 숨결

방태산 산행을 앞두고 지도를 살펴보다가 주변의 인제 현리 등 낯익은 지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행 들머리인 방태산 휴양림으로 향하는 산행 버스는 서울 양양고속도로 인제 IC에서 내려 현리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기린면을 지나간다.방태천과 내린천이 하나로 합쳐지며 소양강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 기린면 현리, 일병 시절 두 달 동안 복무했던 제3급 양대가 그곳에서 지척이다. 제1군수사령부에 새로 생긴 감찰 입회병으로 예하부대의 군수물자 수불 업무를 확인하던 시절 산하 여러 보급부대 가운데 하나였다. 군 복무 시절이나 공복인 지금이나 여러 객지를 떠도는 것은 타고난 팔자인가 보다.현리에서 방태천을 따라 난 길을 구불구불 오른다. 병풍처럼 좌우로 산이 첩첩 높이 솟은 길 옆 산비탈을 따라 감자 옥수수 더덕 등 농작..

쓰레기 섬과 달동네의 기억

서울 둘레길 제7구간, 난지도와 앵봉산완연한 가을이다. 날씨는 맑고 공기는 선선하다. 지하철 분당선과 7호선을 갈아타며 가양으로 향했다. 서울 둘레길 걷기에 나서기로 한 날이다. 코스는 서울 둘레길 여덟 개 가운데 남겨둔 세 구간 중 하나인 제7코스, 가양역에서 출발하여 가양대교 노을공원 하늘공원 월드컵경기장 불광천 봉산 앵봉산을 거쳐 구파발역까지 걷는 16.6km 구간이다.두세 명이 걷던 예전과 달리 고교 동기와 후배 등 함께 걸을 5명이 가양 전철역에서 만나 가양대교 쪽으로 발을 옮긴다. 가양대교의 한강 하류 쪽으로 난 보행로는 좁아서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다. 차량들이 질주하며 내는 소음을 애써 외면하고 간간이 지나는 라이딩 족들에게 길도 비켜주면서 긴 다리를 건넌다.자전거나 차량보다 ..

걷기 종합 선물 세트

서울 둘레길 제5구간, 석수에서 사당까지장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다. 그 사흘째 되는 날 느긋한 아침식사 후 근질거리는 몸을 달랠 길이 없다. 어디 바람 쏘일 곳 없을까? 가깝지만 익숙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는 동네 뒷산 대신 가보진 않았지만 전철이나 광역버스로 금방 닿을 수 있는 그런 곳.산행도 여행과 마찬가지로 한 번 갔던 곳 보다 새로운 곳에 더 끌리게 마련이다. 둘레길은 추석 종합 선물세트처럼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코스들 중 하나를 골라서 둘러보는 재미를 준다. 지난달 수서역에서 사당역까지 서울 둘레길 제4코스에 이어 엊그제 망우리에서 광나루까지 제2코스를 다녀왔던 터였다. 매력에 빠져든다는 게 이런 것일까? 무엇이든 자기만의 매력을 가진 것은 아름답다.목동에서 출발한 친구와 석수역에서 합류하여 전..

중심과 주변의 만남

서울 둘레길 제4구간, 수서에서 사당까지처서가 지나고 백로를 앞둔 여름의 막바지다. 아침에 나서니 바깥바람이 서늘하다. 아파트 사이로 난 작은 숲엔 매미 소리가 멈췄고 그 빈자리를  귀뚜라미 소리가 대신해서 채웠다.야탑역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버스터미널과 전철역 등으로 각기 제 길을 찾아 바삐 흩어진다. 지난 18일 철원 K9 자주포 사고로 산화한 두 병사도 저들처럼 앳되고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일 것이다.친구들과 둘레길 걷기로 하고 약속 장소인 수서역으로 가는 길이다. 요즘 전철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없는 것을 보며 고령시대를 실감한다. 등산복에 스틱을 든 노약자석 두 분도 70쯤은 돼 보인다. 몸을 잘 건사하면 나도 저분들 나이에도 야산이나마 다닐 수 있을까. 반 세기 넘게 몸을 부렸으니 치과에서 '총체적..

아주 특별한 서울특별시

서울 둘레길 제3구간, 광나루에서 올림픽공원까지시월이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아침 공기가 차고 신선하다. 미화원이 도로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다. 복정과 천호에서 각각 8,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나루 역에서 내렸다. 먼저 도착한 친구를 만나 서울 둘레길 제3코스로 접어든다. 광나루, 광진교, 암사동 생태공원과 선사유적지, 고덕산, 일자산을 지나 올림픽공원까지 갈 예정이다.광나루에서 얼굴로 비스듬히 쏟아져내리는 햇빛을 마주 보며 걷는 길이 상쾌하다. 한강대교에 이어 1937년 두 번째로 한강 위로 놓인 광진교는 6.25 때 파괴되고 1994년 철거되었다가 2003년과 그 후 본교량, 자전거도로, 녹지보행로가 각각 조성되었단다.광진교 상하류 쪽으로 각각 암사대교와 올림픽대교가 보인다. 너른 한강 한가운데 오..

혼백과 함께 거니는 길

서울 둘레길 제2구간, 망우 공원에서 광나루까지서울 둘레길 두 번째 구간을 향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전철역 화장실 옆칸에서 들려오는 토악질 소리가 힘겨워 보인다. 또래 혈기왕성한 어떤 친구들과 어떤 주제를 놓고 밤새워 잔을 기울였을까? 내 젊은 시절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다시 토해낸 술은 몇 됫박이나 될까.분당선 강남구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탔다. 한강을 건너고 건대, 용마산, 상봉을 지나 태릉에서 다시 6호선 전철로 환승하여 한 정거장 떨어진 화랑대에서 내렸다. 항상 시간을 잘 지키는 친구 M과 약속시간에 맞게 합류했다. 서울 둘레길 제2구간은 화랑대역에서 용마산과 아차산 자락을 지나 한강변 광나루역까지 이어지는 12.6km 약 대여섯 시간 걷는 평이한 코스다. 당초 화랑대역 ..

가늠할 수 없는 웅장함과 은둔

서울 둘레길 제1구간, 수락산과 불암산이른 아침 팔에 와 닿는 공기가 선선하다. 입추가 지났고 처서도 코앞에 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집 앞에서 익숙한 9407번 버스로 청담역으로 가서 7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렸다.친구 M과의 약속 시간까지 역사 옆 창포원을 둘러보았다. 폰테데리아, 파피루스, 루엘리아, 탈리아 등 창포원 건물 앞 화분의 이국적 이름의 화초들과 공원과 화단을 수놓은 많은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12개 테마로 2009년 개장한 창포원을 잠시 잠깐 둘러보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도착한 M을 만나 애초 계획했던 수락산 산행 대신에 서울 둘레길 제1구간을 종주하기로 했다. 서울 둘레길 8개 구간 가운데 2~5구간은 완주했고 1,6~8구간을 ..

[영남길 10구간] 이천 옛길, 경계에 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하다. 경기도의 영남길 마지막 구간인 9,10코스를 걷기로 한 것이다.대합실 TV가 동해안 산불 소식을 전한다. 그저께 고성 강릉 인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어 엄청난 피해를 안긴 산불이 혼신의 진화작업 끝에 잦아들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충청과 경기의 경계에서 영남길을 출발하다.충북 음성 생극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는 곤지암 부근에서 가다 서다 하며 진행이 더디다. 한식을 맞은 주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생극 터미널에서 산성리 어재연 장군 생가까지는 5km 남짓 거리이지만 버스가 없다. 생극과 어재연 생가는 각각 충북 음성과 경기 이천시 율면에 속해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의 맹점을 탓하며 생극에서 운행 중이라는 택시 8대 중 한 대를 잡아탔다. 영남길 ..

[영남길 9구간] 죽산 성지 순례길

영남길 제10구간을 거슬러 제9구간과의 교차점인 안성시 죽산면 금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죽산면까지 9.9km는 '죽산 성지 순례길'이다. 금산교회 옆 축사를 가득 채운 크고 순한 눈망울의 소들이 먹이통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린 송아지들은 낯선 발소리를 경계하며 안쪽 벽으로 물러선다. 청풍쉼터 건너편 망이산 자락 능선으로 올라 쓰러진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허기를 달래 본다. 한적한 농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번듯한 건물의 안성ㅇㅇ 기숙학원엔 젊은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싱그럽다. 그 앞 판교 노인회관 옆에서 마른풀 태우는 연기 냄새는 향기롭다. 현풍 곽 씨 충효각이 있는 광천마을을 가로질러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화봉천에는 야생 오리 한 쌍이 정겹게 헤엄친다. 눈에 띄는 경계도 없이 이웃한 장암마을은 장군 안..

[영남길 8구간] 죽주 산성길

백암면 황새울 마을에서 영남길 제7구간 구봉산길이 끝나고 제8구간 죽주산성길이 시작된다. 사방이 툭 트인 벌판의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고 얕은 구릉을 빗겨 가고 묘목이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축사 옆을 지나고 작은 고개를 넘어섰다.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들기 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길은 용인과 안성의 경계를 넘는다.농사 준비로 바쁜 안성 삼죽면 내장리의 너른 들길을 가로질러 멀리 비봉산과 그 품에 안긴 봉정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가 깔린 경사진 길을 올라 봉정사에 들렀다가 우측 기슭을 휘돌아 해발 372미터 비봉산 정상에 올랐다. 남쪽으로 남산과의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한 죽산면 마을이 펼쳐져 있다.동쪽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236년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과의 15일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