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24

천상의 화원, 곰배령

그끄저께가 상강(霜降)이었다. 바야흐로 단풍이 붉게 물들고 국화도 탐스럽게 필 아름다운 시기이다. 안내산악회 버스로 곰배령 산행을 가기로 한 날인데, 10도 안팎의 기온으로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복정역 1번 출구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산악회 버스는 사당에서 출발하여 양재역을 거쳐 약속된 시간에 도착했다. '반더룽(Wanderung)은 영어의 '백패킹(backpacking)'과 유사한 의미의 독일어인데, 이 산악회의 운영자도 남과 다른 독특함을 추구하는 면이 있나 보다. 사당역에서 먼저 탑승한 친구 M이 버스 맨 뒤 좌석에서 반겨 준다. 버스는 수도권외곽순환로를 거쳐 팔당대교를 건넜다. 한강으로 내려앉는 예빈산과 검단산 산줄기 끝에 안개구름이 깔렸고,..

광주(廣州) 텃골 국수봉

지난주에 남한산성을 찾았었다. 아픈 역사의 상처를 숨긴 채, 잘 정비된 성곽은 반듯하고 행궁은 소담하고 단아하다.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서문 성곽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 또한 일품이었다. 1636년 병자년 12월 2일, 청 태종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심양을 출발하여 조선으로 진격했다. 그해 12월 9일 압록강을 넘은 전봉장 마부태 부대는 의주 백마산성, 영변 철옹성, 안주성, 황주 정방산성 등을 우회해서 10여 일 만에 한양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강화도로의 몽진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청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경상좌병사 허완(許完)과 경상우병사 민영(閔栐)이 근왕군(勤王軍)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1637년 1월 28일 쌍령..

칠장산, 세 정맥 한 곳에 모이다

칠장산이 있는 죽산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가 사방을 덮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공포가 전국을 삼킬 태세다. 국내나 중국 일본 등 이웃뿐 아니라 세계 전역으로 확산일로다. 일죽 IC로 내려섰다. 칠장사를 비롯해서 봉업사지, 죽주산성, 매산리 석불입상 등 오래된 문화유산이 많이 전하는 죽산은 '경기도의 경주'로 불린다고 한다.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 동상이 맞이하는 죽산면 소재지로 들어섰다. 인력사무소 앞에 건장한 젊은 남성 네댓 명이 서성인다. 모습이 모두 동남아인들로 보인다. 죽산 시외버스터미널 정차장은 텅 비었다. 간간이 동서울 광혜원 이천 등지에서 달려온 버스가 들어와서 승객 한 두 명을 내려주거나 태우고 서둘러 빠져나간다.구름 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민 태양은..

일림산, 남도의 꽃 소식

주말 전야 시간은 자정으로 향한다. 신사 전철역,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 틈에 등산복 차림 배낭을 멘 산객들이 하나 둘 눈에 띈다. 친구 M과 만나 전철역 부근에서 출발하는 무박이일 산행 버스에 올랐다. 이번 산행 테마는 북에서 남진하는 가을 '단풍산행'에 대비되는 남에서 북진하는 봄 '철쭉 산행'이다.몇몇 등산동호회에서 운영하는 전세버스 산행을 친구들과 서너 번 이용했었다. 주로 전국 각지 명산이나 눈, 꽃, 억새 등 계절별 테마별로 운영되는 금요 무박, 토요 당일 등 산행은 소확행을 추구하는 주말족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위안이다.대부분 장년을 지나 노년의 골짜기로 내려서는 분들과 일단의 젊은이 등 버스는 만원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을 출발한 버스의 목적지는 보성군 웅치면 제암산 자락 자연휴양림이..

문경의 진산 주흘산

지난여름은 길고도 지리했다. 데워진 가마솥처럼 식을 줄 모르던 여름의 열기가 태풍 소식이 뜸해지자 온전히 식어버렸다. 바야흐로 계절은 낮과 밤이 몸을 섞으며 경계가 모호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로 들어섰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암사역에서 M의 차량에 탑승하며 친구들과 합류했다. 저번 대암산 산행에 이어, 한 달여 만에 다 함께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 산행을 하기로 한 터였다. 서울을 벗어나며 날이 밝았지만, 짙은 안개는 백여 미터 남짓 시야를 허락할 뿐, 경기도와 충청도를 거쳐 소백산맥을 넘기 전까지 산야를 뒤덮고 있다. 이화령을 지나서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로 들어서자, 안개의 나라에서 맑게 갠 나라로 시공을 뛰어넘어 날아온 듯 안개는 자취를 감추었다. 왕복 4차선 새..

팔봉산, 강과 산의 향연

평소 언젠가는 한 번 가야겠다고 벼르던 산 가운데 하나가 팔봉산이었다. 군 복무 시절 원주와 춘천을 오갈 때 지나치던 홍천처럼,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산이었다.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갈망이 어디 산뿐이랴! 비우던 버리던 감행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결코 가벼워질 수가 없나 보다.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라는 노랫말처럼. 그래서인지 모 산악회가 준비한 팔봉산 산행 계획이 반가웠다.구리에서 출발하여 사당을 거쳐 복정에서 나머지 산객을 태운 버스는 빈 좌석 없이 만원이다. 1호차에 올라 친구와 반갑게 악수했다. 신청자가 많아서인지 버스 한 대를 증차해서 1,2호 차가 나란히 목적지로 출발했다.경기와 강원의 경계를 지날 즈음 자욱이 끼었던 아침 안개는 팔봉산이 가..

설악산 암자와 불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때 이르게 달아오른 바깥공기의 열기가 훅 하고 목덜미를 비집고 들어온다. 전철역은 늦은 퇴근 귀가 인파로 북적이고 역 광장은 열기에 아랑곳없이 젊은 남녀들의 열정으로 넘친다.늦은 시각 서울 잠실과 성남의 경계에 위치한 복정역은 원거리 야간산행객을 태울 버스가 거쳐가는 거점 중 한 곳이다. 등산복 차림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이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린다. 자정 경에 도착한 45인승 버스는 친구 둘을 포함해서 산객들로 빈 좌석 없이 가득 찼다.버스는 소등을 하고 도심을 벗어나 어둠 속을 달려 설악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짧은 잠을 청하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몸만 이리저리 뒤틀어 본다. 새로 1:30경 내설악 휴게소에 정차한 차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쐬고 굳어 있는 팔다리도..

가야산과 해인사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이다. 직장 산악회에서 계획한 가야산 산행을 위해 서면역 부근 버스 출발장소로 향했다. 그저께 폭음 후유증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몸이 찌뿌듯하다. 온천천엔 아침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발걸음 느긋하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빽빽한 평시와 달리 전철 안도 여유롭다.OB 대여섯 분 포함 20여 명을 태운 노란색 25인승 버스가 8시경 출발했다. 쾌청하던 하늘이 남해고속도로 진영 IC 부근에 들어서자 안개가 자욱이 밀려오며 왼편 정병산을 온전히 덮었다. 다행히 천주산과 작대산을 관통하는 창원터널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자취를 감췄다.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안개에 '가야산 모습 제대로 볼 수 있을까'하고 지레 걱정했던 마음이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칠원 I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추석 연휴에 찾은 명산, 백운산과 화악산

포천으로 향하여닷새 간의 추석 연휴 이틀째 날이다. 백운산 산행을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서 포천시 이동면의 흥룡사로 차를 몰았다. 송파 인터체인지에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를 관통하고 강동대교를 건넜다.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경계를 넘고 퇴계원 IC로 들어선 애마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임송 IC에서 47번 국도로 갈아탔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첩첩 높고 낮은 산들이 능선을 뻗으며 맥을 이어가는 산천, 그 사이로 난 얽히고설킨 도로망을 달리는 차량의 행렬은 건강한 미세혈관처럼 막힘이 없다.  왕숙천 천변으로 들어선 47번 국도를 따라 한동안 북진하니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안개구름을 머리에 인 검푸른 빛 산봉우리들과 능선이 차창을 스친다. 그 모습이 운무 속에 멀겋게 ..

월악산 영봉과 달

네 해 전 늦가을 찾았던 월악산으로 향했다. 그때 수안보에서 일박이일 워크숍을 끝내고 차를 몰아 잠시 들른 만수휴게소, "반나절로 다녀오기 어렵다."는 그 휴게소 노부부의 말에 따라 월악산 주봉 대신 만수봉에 올랐었다.휴게소 입구 돌하르방, 소박하고 구수했던 산채비빔밥, 계곡 작은 폭포에 맺힌 고드름, 희끗희끗 초설이 깔린 등산로, 푸른 산죽,... 시간은 흘렀어도 그때 산행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함께 산행을 하기로 한 친구가 수고롭게 차를 몰아 우리 집 근처로 왔다. 시간 반여 만에 괴산 IC를 빠져나와 충주호 가장자리를 따라 난 36번 도로를 달려 제천 덕산면 수산리에 도착했다.월악 동쪽을 휘돌아 흐르는 광천은 월악 서쪽의 달천과 만나 충주호로 흘러든다. 광천 위에 놓인 수산교를 건너 수산리에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