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3

설악산 암자와 불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때 이르게 달아오른 바깥공기의 열기가 훅 하고 목덜미를 비집고 들어온다. 전철역은 늦은 퇴근 귀가 인파로 북적이고 역 광장은 열기에 아랑곳없이 젊은 남녀들의 열정으로 넘친다.늦은 시각 서울 잠실과 성남의 경계에 위치한 복정역은 원거리 야간산행객을 태울 버스가 거쳐가는 거점 중 한 곳이다. 등산복 차림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이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린다. 자정 경에 도착한 45인승 버스는 친구 둘을 포함해서 산객들로 빈 좌석 없이 가득 찼다.버스는 소등을 하고 도심을 벗어나 어둠 속을 달려 설악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짧은 잠을 청하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몸만 이리저리 뒤틀어 본다. 새로 1:30경 내설악 휴게소에 정차한 차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쐬고 굳어 있는 팔다리도..

설악산, 내 지친 어깨를 떠미네

새벽에 집을 나섰다. 하늘에 하현달이 잔잔한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돛단배처럼 쓸쓸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로를 따라 촘촘히 들어선 잎이 무성한 벚나무 가로수 숲 너머로 머리 부분만 내민 고층 아파트는 출항을 준비하는 군함같이 늠름하다.지하철 분당선이 지나고 8호선의 시발역인 모란에서 8호선을 탔다. 양쪽 창 가로 놓인 벤치처럼 긴 좌석 네 모퉁이는 젊잔이 들이 차지했고 가운데 부분은 덩그러니 비었다. 단대오거리역 산성역 등 성남 구 도심을 지나 가락 잠실역으로 빠져나오면서 헐렁하게 비었던 객실은 금세 채워졌다. 구의강변역에서 전철을 내려 길 건너편 동서울버스터미널 건물로 들어서니 7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늘 산행을 제의한 친구 M이 예매해둔 한계령행 승차권을 셋이서 하나씩 ..

설악 공룡능선 번개 산행

관문(關門)에 들어간 후 삼십구 년 여의 긴 항해를 마치고 어제 퇴임식을 가졌다. 포항에서 짐을 챙겨 칠백 리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거실은 펼쳐 놓은 짐으로 어수선한데 서둘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럴 의욕도 솟질 않는다. 오후에 P와 차를 몰고 속초로 향하고 있다는 B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새벽 설악산 소공원을 출발해서 공룡능선 코스 원점회귀 등반을 할 요량인데 함께 하자고 한다. 퇴임식을 한 지 만 하루 만에 뜻하지 않은 즉석 원정산행 제의에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딱히 해야 할 일도 없으니 다녀오라고 한다. 설악산, 그것도 험하기로 이름난 공룡능선을 이처럼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따라나서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학과 직장 생활을 같이 한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