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시포스 6

동짓날 남한산성을 오르며

오랜만에 걷기에 나선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성남 누비길 제1구간을 걸어볼 요량이다. 도시는 아직 두터운 어둠의 이불을 덮어쓰고 있다. 미명의 새벽에도 정류장이나 전철역에는 어김없이 버스와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먼길 떠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바쁠 것이다. 우리도 때때로 설레거나 두려운 마음으로 먼 곳으로 발을 내디딜 때가 있다.전철 안은 온통 검은색 롱 패딩을 입은 사람들 일색이다. 모란에서 전철을 타고 태평과 가천대를 지나 복정에서 내렸다. 안내지도를 보니 누비길은 남한산성길, 검단산길, 영장산길, 불곡산길, 태봉산길, 청계산길, 인릉산길 등 성남 시계(市界)를 따라 62.1km 7개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누비길이 시작되는 서울과 접한 복정동 성남대로 옆에 시조 탑(市鳥塔)이 서있다. "성남에 ..

대관령 너머 관동으로

예년 여름휴가 때처럼 속초로 향했습니다. 말복 더위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휴가 여행이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버티는 아이들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제9호 태풍 레끼마는 상해 북서쪽에서 중국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지만 한반도에는 큰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경춘고속도로를 경유해서 미시령 터널을 지나는 밋밋한 코스 대신에 대관령을 넘기로 했습니다.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횡성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들며 피곤해하는 몸을 달랬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를 지나치고 대관령 IC에서 내렸습니다. 대관령 하행선 방향 휴게소는 캠핑 차량들이 연립주택처럼 줄지어 서있습니다. 태백산맥을 넘으려던 안개와 비는 800미터가 넘는 능선에 가로막혀 산과 도로를 뒤덮..

부산에서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그칠듯 그치지 않고 얇은 빗줄기를 흩뿌리고 있다. 점심을 서둘러 들고 우산을 들고 세관 후문을 나섰다.조간신문 한켠에 실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 명작 부산 찾는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었다. 부산미술협회가 5.17-6.17일간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미켈란젤로(1475~1564)의 작품 '메디치 마돈나' 특별전을 준비한 것이다.사무실에 접해 있는 수미르 공원 앞 건널목을 건너고 중앙역 지하도를 빠져 나왔다. 용두산 북쪽 대청로를 400여 미터 따라가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이던 근대역사관에 도착했다. 비가 흩뿌리는 평일의 작은 박물관 특별전시실엔 우리 둘 외에 노인 대여섯 분들이 전부다.전시실로 들어서자 이태리 건축가 르네상스 미술사 전문가 등이 꾸몄다는 전시장은 피렌체 메디치 ..

무을 기행

여름 내내 계속된 가뭄에 저수지가 마르고 논바닥은 타들어 갔다. 오랜 가뭄 끝에 폭우로 시작된 장마가 또다시 농민들의 애간장을 까맣게 태워놓고 팔월로 들어서서야 물러갈 채비를 한다. 무을(舞乙), 고향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네 해 만에 찾아가는 길이다.      도로변 첩첩 산들이 비를 잔뜩 머금고 능선을 타고 넘으려는 구름과 버겁게 씨름하고 있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하나 너도 이제는 없는데….’ 라디오의 허스키한 노래 가사가 마치 내 마음속에서 구름처럼 일었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생각을 들여다본 것 같다.   여주에서 들어선 중부내륙 고속국도는 장호원, 충주, 단양, 문경, 상주를 거쳐 선산을 지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서울과 충청, 경상을 연결하는..

부산 동래 온천장 탐방기

가을이 다가오니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다. 부산으로 내려온 지도 벌써 아홉 달이 지났다. 그사이 겨울, 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동래 온천장에 있는 온천탕 중 규모가 제일 큰 허♡청엘 가보기로 했다. '동래' 하면 온천이 생각나고 '동래온천' 하면 허♡청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관광지나 다름없어 혼자라 좀 어색도 했지만 동네 대중탕에 가는 셈 치면 되니까.부산에 내려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숙소 부근 지하철역에서 세 정거장 거리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무심하다 싶기도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데 이유 없는 발걸음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683년 재상이 입욕했다.' - 삼국유사 -'왕이 행차했다.' - 동국여지승람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알려진 동래온천은 여러 역사 기..

감천, 고달픈 현실 달콤한 꿈

아침에 쾌청하게 맑던 날씨가 오후 늦게부터 뿌옇게 흐려졌다. 날씨예보도 미세 먼지 '나쁨'이라고 알린다. 부산에 내려온 후로 이처럼 탁한 하늘은 처음이다. 늦겨울부터 봄철 내내 먼지 스모그 해무 등으로 혼탁했던 인천의 기억이 먼지 낀 창 너머를 내다보는 듯 흐릿하게 머릿속에 오버랩된다.일과를 마친 후 운동화로 갈아 신고 사무실을 나섰다. 탁한 공기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예정대로 비석마을과 감천 문화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중앙역에서 전철을 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부산전철 로고송을 뒤로하고 토성역에서 내렸다. '갈매기 떼 나는 곳, 동백꽃도 피는 곳, 아~ 너와 나의 부산 영원하리'토성역에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고 경사진 오르막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머리 위로 떠오른 초승달은 가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