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따라 서울 한바퀴

아주 특별한 서울특별시

인산(仁山) 2024. 8. 22. 10:34

서울 둘레길 제3구간, 광나루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시월이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아침 공기가 차고 신선하다. 미화원이 도로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다. 복정과 천호에서 각각 8,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나루 역에서 내렸다. 먼저 도착한 친구를 만나 서울 둘레길 제3코스로 접어든다. 광나루, 광진교, 암사동 생태공원과 선사유적지, 고덕산, 일자산을 지나 올림픽공원까지 갈 예정이다.

광나루에서 얼굴로 비스듬히 쏟아져내리는 햇빛을 마주 보며 걷는 길이 상쾌하다. 한강대교에 이어 1937년 두 번째로 한강 위로 놓인 광진교는 6.25 때 파괴되고 1994년 철거되었다가 2003년과 그 후 본교량, 자전거도로, 녹지보행로가 각각 조성되었단다.

광진교 상하류 쪽으로 각각 암사대교와 올림픽대교가 보인다. 너른 한강 한가운데 오리 두 마리가 가라앉을 듯 말 듯 떠있다. 한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걸어서 넘은 기억이 까마득히 멀고 어느 다리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먼 기억과 같이 꿈도 강물 위 흔들리는 물비늘처럼 좀체 움켜쥘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광진교 남단에서 상류 쪽으로 강과 강변공원 보도 사이에 162천 평방미터 암사 생태공원이 자리한다. 비무장지대처럼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어 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단다. 강 너머 강변북로 위로 아차산이 눈앞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기온이 영도에 가까워 손이 곱다. 철새 관찰 데크 앞 하중도 부근에서 큰 왜가리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서둘러 날아간다. 작은 박새들은 나무가지 이리저리 분주하게 옮겨 다닌다. 올림픽도로 아래로 난 암사나들목을 빠져나오며 한강을 뒤로했다.

고덕로 보도 위를 노란 은행잎이 뒤덮었고 길 옆 서너 평씩 구획된 주말농장엔 파 무 배추 등 잘 자란 채소를 수확하는 도시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암사 선사유적지 매표소 앞에는 일상에서 잠시 해방된 아이들의 신이 난 뜀박질에 함께 나온 젊은 어머니들도 즐거운 표정 들이다. 유적지가 끝나는 곳 얕은 산에 안긴 아늑한 서원마을을 지나고 암사아리수정수센터 정문 앞에서 고덕산으로 접어든다.

 

순식간에 해발 100m에도 못 미치는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뿌연 하늘을 이고 있는 강동대교와 남양주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가 멸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절의를 지켜 이곳에 은거한 이양중의 고매(高邁)한 인격과 덕성(德性)을 기려 이름 붙인 고덕산(高德山)은 온전히 흙으로 덮인 산으로 숲길이 폭신하다.

산 중간중간 얕은 곳을 관통하는 도로들로 인해 샘터공원, 방죽 근린공원, 명일 근린공원, 상일 동산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야트막한 능선이 산책로처럼 길게 이어진다.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솟고 있는 갑갑한 아파트촌에 신선한 숨을 불어넣는 허파 같이 소중한 존재다.

정오경에 고덕산을 온전히 빠져나와 상암로와 천호대로를 건너서 서울 강동을 등지고 한 일자로 남쪽으로 곧게 뻗은 일자산(一字山) 능선으로 올라섰다. 일자산은 하남시와 경기 광주 출신 고려 말 대학자 이집의 호를 따서 지은 서울 강동구의 둔촌동(遁村洞)을 경계 짓는 해발 134m의 산이다.

얕고 너른 고개 너머는 하남시 초이동이다. 차량이 내달리는 소음과는 달리 능선 너머 초이동 쪽에서는 메에~ 하는 염소 우는 소리가 한가롭다. 고덕산처럼 일자산에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고 중간중간 조성된 체육시설을 차지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운동에 여념이 없다.

초이동에서 감북동까지 남북으로 5㎞여 뻗어 있는 산 일대가 1971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휴양시설과 산책로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긴 능선을 지나 이집의 훈교비(訓敎碑)가 있는 해발 134m 정상에 조성된 해맞이 공원을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방이생태학습관
완만한 내리막 길 옆으로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좌측 아늑한 기슭 공원묘지에는 봉긋한 묘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멀리 청량산 자락을 따라 송전탑들이 길게 늘어섰고 건축 중인 빌딩들은 옥상에 크레인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다.

서하남 IC 교차로 부근으로 내려섰다. 동남로 도로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꽃집의 여러가지 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가 감이천을 건너 방이 생태학습관에 들렀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며 버들나무군락, 갈대 군락지, 연꽃 연못, 철새 관찰소, 개구리 웅덩이, 논습지와 허수아비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생태학습관에서 성내천으로 접어들며 오금동 문정동을 지나 수서로 이어지는 밋밋한 둘레길 코스를 벗어나 올림픽공원 방향으로 성내천을 따라 내려갔다. 올림픽플라자 너른 광장의 상가에서 김밥과 라면을 들었다. 가로등마다 아이돌 여가수의 연 현수막이 걸린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부근은 젊은이들이 한창 몰려들고 있다.


서울 둘레길 제3구간은 당초 예상했던 도시의 삭막한 보도블록 길 대신에 툭 터인 한강과 생태공원, 선사유적지, 야트막하고 아늑한 숲길, 잘 정비된 하천길 등 서울의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한 흥미로운 코스다.

특별시라는 타이틀답게 서울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정말 특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직접 가서 보고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함께 술 한 잔 같이 기울여 보지 않은 타인을 제대로 알 수 없듯이... 발품 술품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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