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시작된 찜통더위를 피해서 또는 갑갑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는 심사였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서하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칠사산 줄기가 길게 뻗어 내리며 산자락을 펼쳐 놓았고, 그 앞으로 흐르는 경안천이 팔당호로 안겨들기 전 너른 평야를 껴안고 휘돌아 흐르는 지형입니다.
범상치 않은 수려한 지세가 인물을 낳는다고 했던가요. 서하리는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1894~1956)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문교부장 등 요직을 맡았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제헌국회의원과 국회의장에 피선되기도 했습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그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전주 유세를 위해 호남선을 타고 가다가 5.5일 상오 돌연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유해가 서울역에 도착하자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의 선거구호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쳤다고 합니다.
서울역에는 때 마침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가득 실은 논산행 열차에서 노래 한 곡이 흘러 퍼졌다고 합니다. 청년들이 부른 그 노래가 바로 <비 내리는 호남선>이었습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_손로원 詞 박춘석曲
5.15일,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빠지게 된 선거는 자유당 이승만과 무소속 진보주의자 조봉암 양자 대결 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선거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신익희에 대한 추모의 표시로 많은 국민들이 고인이 된 신익희에게 기표를 했더랍니다. 20.5%라는 역대 선거 중 최대의 무효표가 나온 이유라고 합니다.
출반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이 5월 5일 서울역발 논산행 열차에서 울려 퍼진 것을 계기로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했고, 작사가 손로원과 작곡가 박춘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호된 경찰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서하리엔 여름이 한창이고 단아하고 고요한 해공의 생가 마당엔 참나리꽃이 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