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이다. '광복 70주년 계기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국무회의에서 광복절 하루 전 날인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친구들과 차를 몰아 소백산으로 향했다. 산행은 소백산 줄기 단양과 풍기를 잇는 해발 760미터 고치령 고개에서 시작된다.
고치령은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으로 서남쪽으로 내리 뻗은 태백산 줄기와 낮아지는 소백산 줄기가 만나는 해발 760미터 고개다. 이 고개 너머 북쪽 마락리는 경북 영주에 속하지만 고개를 등지고 충북 단양을 바라보고 있어 '영남의 고도(孤島)'라 불린다고 한다. 길을 오가던 보부상의 말이 자주 떨어져 마을 이름이 마락리(馬落里)라고 한다. 고개를 넘으면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이고 좀 더 북쪽은 영월군 감삿갓면으로 김삿갓 유적지가 맞이할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백두대간은 신경준이 1769년 발간한 「산경표(山經表)」에 나오는 개념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 땅의 등줄기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산줄기 분류체계를 바탕으로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산 줄기를 다시 바다로 흘러드는 주요 강의 수계를 가르는 1 정간과 13 정맥으로 족보 책 형태로 분류했다.
고 이우형 씨가 1980년 서울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조선광문회본 「산경표」를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일본인 지리학자 고또 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3년 발표한 「조선 산악론(朝鮮山岳論」이라는 지질학 연구논문의 땅 속의 지질 구조에 따라 땅 위 산줄기를 분류한 '산맥'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육당 최남선은 「소년(少年)」1908년 11월호에 고토 분지로의 이론을 비판하고, 그가 주축이 된 조선 광문회가 최성우 소장본을 바탕으로 1913년 2월에 활자본 「산경표」를 간행했다고 한다. 영원히 묻힐 뻔 한 우리 고유의 산줄기 분류체계가 「산경표」로 인해 되살아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월간 「산」 1994년 1월호 등 인용>
고치령 마루에는 금성대군과 단종을 기리는 산령각이 자리하고 있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수양대군의 동생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 그는 1457년 유배지인 순흥(현재의 영주)에서 부사 이보흠과 함께 조카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관노의 고변으로 세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산령각은 처마가 머리에 닿을 듯 낯은 한 평 남짓 작은 사당이다. 그 안에 단종을 태백산 신령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 신령으로 모셔 기리고 있다. 역사의 패자들은 쓸쓸히 잊히기 마련이지만 충절과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정신만은 영원히 지울 수 없나 보다.
고치령에서 미내치, 마구령, 갈곳산,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산행은 고도 800미터가 넘는 평탄한 산줄기를 따라 걷는 조금은 무미건조한 여정이다. 바야흐로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시절은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으로 온 숲을 무성한 나무들로 빽빽이 채우고 있다. 공기는 잔뜩 수분을 머금어 눅눅하고 시야는 안개에 갇혀 사방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마저도 답답하다.
죽령, 고치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고개 가운데 하나인 마구령은 소백산 경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해발 820미터 고개다. 고갯마루에서 부석면 마을에서 더위를 피해 올라온 청년 네댓 명이 앉거나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산행 대여섯 시간 만에 마구령에서 4km여 거리의 갈곳산에 다다랐다. 표지석도 없는 해발 988m 갈곳산, 그 정상에서 북쪽으로 늦은목이를 지나 선달산을 넘으면 강원도 감삿갓면, 남쪽으로는 부석사를 품은 봉황산으로 이어진다. 늦은목이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비껴서 부석사를 품은 봉황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까지의 평탄한 백두대간 길과는 달리 봉황산 정상에서 부석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봉황산에서 사찰 뒤편으로 내려선 우리 일행을 응진전, 단하각, 산신각, 대조전, 무량수전, 삼층석탑, 안양루, 부석, 석등, 천왕문, 당간지주, 일주문이 차례로 맞이한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사찰, 의상을 사모한 당나라 처녀 선묘와 부석(浮石)의 전설, 최순우 선생이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평한 무량수전,... 부석사를 찬찬히 둘러보며 그 묘미를 음미했다.
산기슭을 따라 여러 층으로 터를 닦고 석축을 쌓아 건물들을 앉힌 부석사, 안양루 아래 서면 툭 터인 눈앞에 멀리 밀려들고 밀려나는 파도처럼 겹겹이 늘어선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온 천지가 눈에 들어올 듯 거칠 것 없이 시원스러운 조망이 종일 보고 서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지 싶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납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 -
소백산의 고치령, 마구령, 갈곳산,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걷는 조금은 무미건조한 산행, 그 끝에서 만난 부석사는 힘든 산행을 위로하고도 남을 벅찬 보너스다. 사실 나는 산행 내내 머릿속으로 부석사를 생각하며 걸었으니 내겐 부석사가 주(主) 요 산행은 부(副)였던 셈이다.
땀 내음 가득 배인 몸으로 산문을 나선다. 저마다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쓴 사천왕들이 잘 가라는 듯 부릅뜬 눈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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