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산 기행

운길산, 수종사의 종소리

인산(仁山) 2024. 8. 30. 14:25

지난주부터 전국이 장마에 접어들었다는 일기예보다. 남부는 제법 비가 내렸다는데 중부는 찔끔거릴 뿐 비다운 비가 없었다. 어제도 독수리 오줌처럼 찔끔거리다가 말았다.


팔당대교를 건너는 길 한강의 이쪽저쪽 산군이 안개에 싸여 모습이 희미하다. 팔당 2리 마을 앞 슈퍼에 들러 음료수와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등산객 좀 있나요?'라는 물음에 주인 양반은 유행도 수시로 바뀐다며 요즘은 라이딩과 등산보다는 낚시가 대세란다.

마을 초입 노인요양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우리가 목도하는 고령사회를 지나 곧 닥칠 초고령 시대에는 요양시설 수요가 넘쳐날 것이고, 서로 앞다투어 시설 유치에 뛰어들지도 모를 일인데... 나이가 들면 누구나가 의탁할 노인요양시설이 어째서 혐오시설이 되었는지 의아하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생각은 아닌지?

마을 주민들이 밤새 떨어진 살구 줍기에 분주하다. 안개에 덮인 마을 뒤 예봉산과 율리봉이 신비롭다. 한강수계에서 시작하는 예봉산으로의 산행은 에누리 없이 고도 680여 미터를 올라야 해서 여느 산행보다 힘겨울 것이다.

안개와 녹음에 묻힌 산속 아침을 새들이 요란하게 맞이하고 있다. 숲으로 들자 별유천지 비인간의 세계다. 족히 너 댓 시간의 거리를 벌써 내려오는 분들도 있는데, 한뎃잠을 마다하지 않고 비박(Biwak)을 하며 자연에 온전히 몸을 맡겼을 수도 있겠다. 부지런한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세상에 부지런함 만큼 값지고 유익한 것도 드물지 싶다.

능선에 올라서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다잡는 예봉산 정상으로의 1.4km여 오르막 길은 가파르다. 수종사 쪽으로의 다소 완만할 내리막 길을 위안 삼는다. 인생 길도 가파르고 힘겹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고 마음에 여유를 주문하지 않는다면 더 힘들고 고달파질 것이다.

매 경기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가던 메이저리그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어제 콜로라도 전에서 5이닝을 넘기지 못하고 자책 7 실점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두 주연 송송 커플도 마음이 맞지 않아 두 해도 못되어 헤어졌으니 '세기의 커플'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쉽게 쓰이는 역사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되었건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어제는 유명 여배우의 자살 비보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많은 인생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구호를 마음에 품고 현실의 강을 묵묵히 건너고 있을 것인데, 연극 '친정엄마와 이박삼일' 공연차 내려간 전주에서 그녀는 왜 인생의 막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감로주' 막걸리 두 박스가 얹힌 지게를 등에서 내리고 벤치에 앉아 쉬는 지게꾼은 건네는 말에 대답 없이 물만 들이켠다. 홀로 산객들도 수다스러운 단체 산객들에 비해 먼저 인사라도 건네지 않으면 대체로 아무 말없이 진지하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스쳐 지난다.

 

산정에 가까워질수록 이름 모를 산새들 소리는 들리지 않고 까마귀들만 야단법석이다. 속세를 떠나 높은 산 드넓은 창공을 가까이하는 고고함 마저 엿보인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던 이직(李稷, 1362-1431)이나 '까마귀 내리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던 이시(李蒔, 1569-1636)의 시는 자신의 정치적 의도나 도덕적 관념을 애꿎은 까마귀에게 씌운 것일 뿐이다.


해발 482미터쯤 전망대에도 시계는 흐리고 멀지 않다. 예봉산 정상 바로 아래 축구공처럼 둥근 모형을 머리에 인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건물 입구에 '예봉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라는 명판이 걸려 있다. 전국 많은 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 시설물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 케이블카로 연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였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른 나무 데크 난간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독활 나무 꽃이 넘실대는 해발 683미터 정상 부근은 사방이 툭 였음에도 안개로 조망이 좁고 가깝다.

 

정상에서 노부부 한 쌍이 운길산역과 팔당역으로 가는 방향을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멀고 긴 항해에는 크고 튼튼한 배도 요긴하지만 무엇보다 노련한 선장이 가장 중요하다. 긴 인생 항로에서 그런 선장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노부부가 내려가는 길을 제대로 잡으면 좋겠다.


적갑산으로 가는 평탄한 능선은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제철 가을을 고대하는 억새밭 사이에서 털중나리와 노루오줌 꽃이 하늘거린다. 흙길을 걷는 가벼운 발걸음에 까마귀들이 세 박자 음으로 장단을 맞춰 준다.


철문봉 지나서 나오는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에는 역풍이 불어서인지 이카루스의 후예들이 보이지 않는다. 신갈나무 등 활엽수들과 섞여 어깨를 부대끼며 자란 소나무들은 서로가 견제를 한 탓인지 곧게 자라지 않고 가지를 여러 갈래로 뻗었다. 활엽수도 매 한 가지다. 무지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기는 생각보다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봉산에서 1.7km 바위돌무덤 위에 해발 570미터 정상 표지석이 놓인 적갑산을 스쳐 지난다. 딱따구리 한 쌍은 바람 좋은 능선길 옆 고사목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부리질에 분주하다.

 

적갑산 능선이 새재 고개 길로 내려앉는 곳에서 시작되는 운길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세상은 여전히 안개에 갇혔지만 숲은 온통 녹음과 바람과 풀벌레와 새들의 세계다. 땀냄새를 쫓아 날벌레 두어 마리가 동행하자며 달라붙었다.


오른쪽으로 굽이도는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간간이 온전한 모습을 보이는 운길산 모습이 늠름하다. 오르내리는 능선이 힘겹지만 바람과 새소리가 위로해 준다. 고사한 채 여전히 가지를 하늘로 뻗고 서있는 노송은 살아서 이루지 못한 욕망의 비늘인 듯 바닥에 두꺼운 나무껍질을 수북이 벗어놓았다.

 

운길산 쪽으로 가는 능선에서는 유독 노익장을 과시하는 백발의 산객들이 많이 마주쳐 지난다. 운길산 정상을 1.5km여 앞두고 그늘진 바위 무덤 위에 앉아 배낭을 열었다. 팔당리 마을 입구 슈퍼에서 산 김밥에는 우엉 오이 단무지 당근 햄 계란 게맛살 등이 골고루 들어 있어 입이 즐겁다.

 

가파르고 긴 나무계단을 오르다 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해발 610미터 운길산 정상이 홀연히 모습을 보인다. 돌아보면 예봉산과 적갑산을 거쳐 말발굽처럼 휘도는 지나온 능선이 눈 아래 굽어 보인다. 나무데크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숨을 고르며 삼삼오오 모여 올라오고 내려가는 산객들을 지켜본다.


구름이 가다가 걸려 멈춘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는 운길산, 그 정상에서 수종사 쪽으로 내려서는 길 언뜻언뜻 나뭇가지 사이로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양수대교와 경의 중앙선 철길이 눈에 들어온다. 수종사와 운길산역으로 갈리는 갈림길 부근 헬기장 공터에는 준비해온 먹거리를 늘어놓고 떠드는 산객들로 왁자지껄하다.


수종사로 내려가는 길 벤치 옆 바위굴 안에는 금빛 불상 하나가 놓여 있다. 기어서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바위굴도 자비를 깨치고 깨달음을 구하는 도량인 셈이다. 허기야 세상 도처가 도량이라 하지 않던가.

 

울창한 숲으로 어스름 녘처럼 그늘진 길은 잠깐만에 수종사 입구로 내려선다. 잘 닦인 길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서면 머리 위 높은 계단 끝에서 해탈문이 맞이한다. 쏟아져 나오는 산객들을 비켜 그 문으로 들어섰다.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아담한 크기의 삼존불이 가부좌하고 있는 대웅보전, 부처의 세계에 들었으니 의당 그 앞에서 한 번 합장을 했다. 마당을 지나 오른쪽 절벽 가파른 경사 축대 위 종각 안 범종은 규모가 남다르다.


수령 오 백이 넘는 범종각 옆 은행나무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모습이 장대하다. 어느 해 겨울 친구들과 찾았을 때와는 달리 강인해 보이는 가지들 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아래쪽으로 훤히 내려다 보이는 한강 두물머리 양수대교 강 건너 검단산 해협 정암산 등 장쾌한 풍경 앞에 말없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찰 제일 높이 자리한 산령각 옆에는 순백의 접시꽃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각 안에는 민화에 나올법한 익살스럽고 친근한 모습의 호랑이 한 마리가 동자들과 함께 인자하고 위엄스러운 모습의 산신령을 시위하고 있다. 그 아래 응진전에는 16 나한과 함께 그 가운데 순백 색깔 석가모니불이 가섭 아난과 함께 정좌 정좌하고 있다.


삼천헌(三泉軒)이란 현판이 걸린 사방 벽에 창과 문이 달린 당우에는 아기자기한 다기들이 놓인 찻상 대 여섯 개가 자리한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을 마주 보는 삼천헌 창문 너머로 한강의 풍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올라앉아 차 한 잔을 하면 신선놀음이나 다름없을 성싶다.


한참을 앉았다 섰다 둘러보고 나서 계단을 올라오는 일단의 무리를 피해 가며 해탈문을 빠져나왔다. 계단길을 내려서서 불이문을 지나고 부도비와 미륵불상을 지나서 일주문을 나섰다.

 

말미에 만난 수종사는 기대했던 대로 이번 산행의 백미이자 큰 기쁨이다. '수종사가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 격찬했다는 서거정의 평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껏 가보았던 사찰 중 수종사의 풍치에 견줄 만한 곳은 잘 떠오르지 않으니까.


산문을 나서 운길산역까지 2.8km여 내리막 시멘트 포장도로는 마음에 남는 아쉬움을 달래며 걷는 길이다. 포장도로 아래 오른쪽 산길로 내려서서 진중 2리로 들어섰다. 길 옆 평상에 갖가지 채소를 널어놓은 마을 할머니에게서 미나리 두 단과 애호박 세 개를 건네받았다. 할머니는 때 이른 여름 가뭄을 걱정했다.

오후 들어 날이 끄무레해지고 바람도 습하니 장마답게 소낙비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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