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산 기행 36

하늘이 내린 산, 천생산

벌초를 모두 마치고 작은형을 구미역에 내려준 후 천생산에 오르기 위해 검성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고, 자기 뿌리에 대해 관심을 더해가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고향에 내려와서 조부모님 묘소의 벌초를 마쳤고 시간의 여유도 있으니, 문중의 본향 구미시 인동의 진산(鎭山)인 천생산(天生山)을 올라보기로 한 것이다.   검성지에서 약목-선산로의 검성교차로 교량 밑으로 난 좁은 도로는 천생산 서편 산줄기 사이 가장 깊은 골인 산성지(山城池)까지 이어진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 길은 막다른 길로 산성지에서 멎는다. 해는 중천에 솟아 있고, 작은 저수지인 산성지의 적갈색 물빛 수면 위에 천생산 줄기 한 자..

내연산과 십이폭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절기 상강(霜降)이 지나고 입동(立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단풍 산행 계획을 잡고 십일월 첫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친구 두 명과 함께 이른 아침 포항 시내에서 30km 남짓 거리의 내연산 보경사를 향해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 7번 국도로 접어들어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내연산 품속에서 흘러나와 동해로 안겨드는 광천 옆 2차선 도로로 내려서서 십여 리를 더 달리니 내연산 자락에 안긴 천년 고찰 보경사에 닿았다. 보경사를 출발하여 열 두 폭포로 유명한 내연산의 광천 계곡 북측의 문수봉, 삼지봉, 향로봉 능선을 거쳐 광천 계곡 쪽으로 내려와서 열두 폭포의 맨 위쪽에 있는 시명폭포로부터 맨 아래쪽의 상생폭포를 차례로 ..

추석 연휴에 찾은 명산, 백운산과 화악산

포천으로 향하여닷새 간의 추석 연휴 이틀째 날이다. 백운산 산행을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서 포천시 이동면의 흥룡사로 차를 몰았다. 송파 인터체인지에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를 관통하고 강동대교를 건넜다.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경계를 넘고 퇴계원 IC로 들어선 애마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임송 IC에서 47번 국도로 갈아탔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첩첩 높고 낮은 산들이 능선을 뻗으며 맥을 이어가는 산천, 그 사이로 난 얽히고설킨 도로망을 달리는 차량의 행렬은 건강한 미세혈관처럼 막힘이 없다.  왕숙천 천변으로 들어선 47번 국도를 따라 한동안 북진하니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안개구름을 머리에 인 검푸른 빛 산봉우리들과 능선이 차창을 스친다. 그 모습이 운무 속에 멀겋게 ..

월악산 영봉과 달

네 해 전 늦가을 찾았던 월악산으로 향했다. 그때 수안보에서 일박이일 워크숍을 끝내고 차를 몰아 잠시 들른 만수휴게소, "반나절로 다녀오기 어렵다."는 그 휴게소 노부부의 말에 따라 월악산 주봉 대신 만수봉에 올랐었다.휴게소 입구 돌하르방, 소박하고 구수했던 산채비빔밥, 계곡 작은 폭포에 맺힌 고드름, 희끗희끗 초설이 깔린 등산로, 푸른 산죽,... 시간은 흘렀어도 그때 산행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함께 산행을 하기로 한 친구가 수고롭게 차를 몰아 우리 집 근처로 왔다. 시간 반여 만에 괴산 IC를 빠져나와 충주호 가장자리를 따라 난 36번 도로를 달려 제천 덕산면 수산리에 도착했다.월악 동쪽을 휘돌아 흐르는 광천은 월악 서쪽의 달천과 만나 충주호로 흘러든다. 광천 위에 놓인 수산교를 건너 수산리에 차..

설악산, 내 지친 어깨를 떠미네

새벽에 집을 나섰다. 하늘에 하현달이 잔잔한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돛단배처럼 쓸쓸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로를 따라 촘촘히 들어선 잎이 무성한 벚나무 가로수 숲 너머로 머리 부분만 내민 고층 아파트는 출항을 준비하는 군함같이 늠름하다.지하철 분당선이 지나고 8호선의 시발역인 모란에서 8호선을 탔다. 양쪽 창 가로 놓인 벤치처럼 긴 좌석 네 모퉁이는 젊잔이 들이 차지했고 가운데 부분은 덩그러니 비었다. 단대오거리역 산성역 등 성남 구 도심을 지나 가락 잠실역으로 빠져나오면서 헐렁하게 비었던 객실은 금세 채워졌다. 구의강변역에서 전철을 내려 길 건너편 동서울버스터미널 건물로 들어서니 7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늘 산행을 제의한 친구 M이 예매해둔 한계령행 승차권을 셋이서 하나씩 ..

사량도의 밤과 지리망산

통영 사량도 지리산 산행 온 밤을 전전반측하다가 6시경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은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았다. 하늘엔 샛별이 초롱초롱하고 포구바다 위로 불빛이 아른거린다. 금평항에서 출발하는 윗섬을 한 바퀴 도는 06:50발 첫 버스를 타고 산행 기점인 돈지에서 내렸다. 돈지 항이 어둠에서 깨어나고 있다. 우뚝 솟은 지리산 암릉이 마을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사량초교 돈지분교가 그 밑에 아늑하게 안겨있다. 사량도 지리산은 2002년 산림청이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선정한 산이다. 그 때문인지 많은 섬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뭍으로 나갔지만 더 많은 수의 육지인들이 좋은 계절 낭만과 풍광을 찾아 이 섬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통영 고성 남해 등 3개 시군에 둘러싸인 사량도, 지금은 한..

팔공산, 단풍의 노래

먼 밤길을 달려 대구로 내려갔다. 고속버스는 강릉에서 청량리를 향해 밤새 달리던 비둘기호의 그 막막하고 처량했던 대책 없는 낭만조차 없다. 동대구역 옆 베이스캠프 L모텔에서 친구들을 만나 잠시 눈을 붙였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부근 동대구역 지하도 정류장은 갓바위나 파계사로 가는 버스가 거쳐가기 때문이다.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서 부산을 떠는 친구들과 컵라면 등으로 간소하게 아침을 대신했다. 정류장에는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사람들이 서너 명 눈에 띈다. 정류장에서 5:40경 도착한 401번 첫 버스를 타고 갓바위로 출발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어둠 속을 달리다 서다 반복하며 승객을 하나둘 태우는 버스는 금세 빈 좌석 없이 만원이다.승객 대부분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고 평소처럼 첫 버스를 타는..

인제의 대암산과 용늪

저번 태화산 산행에 이어 두 주일 만에 친구들과 산행에 나섰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자리한 대암산이다. 05:17 야탑에서 수인분당선 전철에 올랐다. 빈 좌석이 승차한 사람들로 거의 다 채워졌다. 군 복무 때 머물기도 했던 인제와 그 부근의 원통, 양구 등은 펀치볼, 박수근, 시래기, 두타연 계곡, 남침용 땅굴, 단장의 능선 전투 등으로 생각의 갈래를 가지 치게 한다. 암사역에서 친구들과 합류하여 가평, 홍천, 철정, 화양강, 소양강 등 지명들을 스쳐 지나고 원통군 북면 원통리를 관통하여 언북천 천변 금강로를 따라 서화면으로 들어섰다. 양구 지역 쪽 날씨를 조회하여 온도 24~25도 비 올 확률(2시, 4시) 60%라는 기상 정보를 확인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볼 수 ..

북한산 봉우리는 몇 개 일까?

오랜만에 서울 강북 쪽으로의 산행이다. 근 한 달 만에 친구들과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목적지는 북한산이다. 주말 전철 안은 평일과 달리 헐렁하다. 전철 3호선으로 환승해서 한강을 건너고 종로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등을 지나 불광역에서 내렸다.북한산 준봉 군락 중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해발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비봉 비봉능선 문수봉 의상능선 의상봉을 거쳐 대서문 쪽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코스다.불광역과 독바위역 중간쯤 불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면 전체 71.5km 21개 구간의 북한산 둘레길 중 '구름정원길' 구간과 교차하는 족두리봉 쪽 들머리가 나온다.맑은 가을날 주말답게 들머리부터 남녀노소 산행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초입부터 가파른 능선은 거대한 암릉이다. 그 중간중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민둥산 억새꽃 물결 속으로

바야흐로 10월이요 네 계절 중 가장 눈부신 가을이다. 기온이 내린 탓인지 사람들 옷차림이 제법 두터워졌다. 청량리역에서 산행 친구 세 분과 만나 며칠 전에 매진되었다는 중앙선 7:00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운길산역을 지나 한강 위 철교를 지날 때 차창 밖에는 비 온 후 웃자란 고사리 마냥 안개가 수면에서 피어오르다 말고 멈춰 서있다. 안개도시 양평은 농무에 묻혀 아직 주말 아침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차창 밖 눈썹 위 높이로 떠오른 태양은 안개에 가려 낮달처럼 말갛다.기차는 시와 도의 경계를 넘으며 안갯속을 헤치고 달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던 야스나리의 설국으로 들어가는 기차처럼.마음은 벌써 민둥산역에 내려 하얀 억새꽃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