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산 기행

하늘이 내린 산, 천생산

인산(仁山) 2024. 9. 22. 21:32

벌초를 모두 마치고 작은형을 구미역에 내려준 후 천생산에 오르기 위해 검성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고, 자기 뿌리에 대해 관심을 더해가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고향에 내려와서 조부모님 묘소의 벌초를 마쳤고 시간의 여유도 있으니, 문중의 본향 구미시 인동의 진산(鎭山)인 천생산(天生山)을 올라보기로 한 것이다.  

 

검성지에서 약목-선산로의 검성교차로 교량 밑으로 난 좁은 도로는 천생산 서편 산줄기 사이 가장 깊은 골인 산성지(山城池)까지 이어진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 길은 막다른 길로 산성지에서 멎는다. 해는 중천에 솟아 있고, 작은 저수지인 산성지의 적갈색 물빛 수면 위에 천생산 줄기 한 자락이 잠겨 있다.

 

오후 세 시경 산성지에서 등로로 들어서서 천생산 정상으로 향했다. 천생산 정상까지는 1.5km로 여러 코스 가운데 가장 단거리 코스로 알려져 있다.  등로 초입은 완만한 경사의 계곡 주변에 미소년처럼 곧게 뻗은 수려한 적송 군락 사이로 난 호젓한 길이다. 계곡 만곡부 노송 아래 정자에는 피서객 두 명이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검성지에서 조망한 천생산

주 능선에서 뻗은 내린 산줄기가 거느린 곁줄들은 갈래갈래 물길을 따라 길을 내놓는데, 그 길들은 언제 폭우라도 쏟아졌는지 패이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며 차츰 고도를 높여 간다. 산객이 즐겨 찾지 않는 등로인듯 인적 없는 등로는 희미하고 깊은 골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일순 산객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경고하듯, 딱따구리가 따 다다닥 따 다다닥~ 마른 나무통을 쪼아대는 소리가 그 적막을 깨트린다.


길인 듯 아닌 듯한 비탈을 한동안 치고 오르니, 왼편으로 푸른 숲 위에 성벽처럼 길게 이어진 암벽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통신 바위 쪽의 천연암벽 병풍바위일 것이다. 능선 마루까지 50여 미터로 보이는 지점, 골은 깔때기 꼭짓점처럼 한 곳으로 수렴하며 가파른 사면 위에 철벽 옹성처럼 높은 암벽이 앞을 턱 막으며 버티고 서있다.


암벽 아랫면을 따라 오른쪽으로 수평으로 이동하여 천생산 정상이자 미덕암 바로 아랫부분 주 능선으로 올라섰다. 주 능선에서 우측으로 휘도니 암벽 뒷면에 산정으로 인도하는 가파른 나무 계단이 길게 놓여 있다. 계단 초입의 너럭바위는 낭떠러지와 함께 탁 트인 전망을 내놓는데, 신동 들판 너머로 큰 천생산, 유학산, 팔공산 등이 능선을 앞뒤로 겹치며 길게 펼쳐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여 천생산 정상부에 올라 남서쪽으로 돌출한 아찔한 바위 절벽 미덕암(米德岩)으로 조심조심 다가섰다. 그 가장자리에서 절벽 아래로 펼쳐진 짙푸른 숲을 조망하니, 뱃전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당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심청의 심정처럼 모골이 송연해진다. 미덕암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지략으로 왜군을 물러나게 한 곽재우 장군 (1552∼1617) 전설에서 유래했다. 나란히 서 있는 안내판이 미덕암 이름 유래와 천생산성에 대해 이해를 돕는다.

미덕암 반대편 대구 방향 조망
미덕암에서 금오산 쪽 조망

"왜군이 산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자, 곽재우 장군은 산 아래에서 잘 보이는 이 바위에서 말 등에 흰 쌀을 부어 말을 목욕시키는 것처럼 꾸몄다. 이에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여긴 왜군이 후퇴했고, 왜군을 물리친 것이 물같이 보인 쌀의 덕이라고 하여 이 바위를 미덕암이라 불렀다."


 "산성은 천생산 정상 주위 8~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서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하였고, 너머지 3면은 정상 주위를 따라 테뫼식으로 축조하였다. 내성 약 1,300m, 외성 약 1,320m로 이 중 인위적인 성벽은 812m이다.  

군사와 군마를 위한 우물, 못, 건물, 장대 등이 설치된 내성은 주민의 피난과 전투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고, 외성은 주로 장기전 대비 내성에 공급할 농작물 경작, 군마 방목, 군사 훈련장 등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덕암 이름의 유래 전설은 오산 독산성에서 왜적을 물리친 권율 장군의 전설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하니 흥미롭다.미덕암 뒤쪽 산불 감시소 옆 제법 너르고 평평한 터에 천생산성 유래비가 해발 407m 천생산의 정상 표지석을 대신하고 있고, 그 앞에는 반듯한 석조 제단도 자리하고 있다. '천생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2004년 1월 1일에 세운 비석이 천생산성의 유구한 유래를 전한다.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

 그 허리 두른 성역(聖域)은

 오랜 세월 외침(外侵)을 막아낸

 역사의 흔적

 일찍이 혁거세(赫居世)가

 축성(築城)하고

 홍의장군(紅衣將軍)이 수축(修築)하였다고

 전하는 천생산성(天生山城)

 면면히 이어온

 역사(歷史)의 시간(時間)을 기리며

 오늘 이 비(碑)를 세운다."


유래비 앞쪽 너른 능선 가장자리의 노송 군락이 낮게 깔린 푸른 구름을 몸에 두른 수백 마리 청룡의 무리가 땅을 박차고 막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습처럼 장관이다. 산성의 정상부에 해당하는 일자(一字) 모양의 평탄한 능선길은 이곳부터 병풍바위 절벽과 석성을 좌우에 끼고 북문지까지 600여 미터 이어진다.

천생산성 인공성벽과 자연 암벽(photo: naver blog)

평탄하던 능선은 북문지에 다다를 즈음 비스듬한 내리막길에 이어 급한 비탈의 나무 데크 계단을 길게 내놓는다. 칡이 넝쿨을 계단 길 위까지 덮으며 진녹색 잎사귀 사이로 진분홍 꽃송이를 군데군데 내놓았다. 얼굴에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콧속으로 스며드는 은은하고 순박한 칡꽃 내음이 좋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그 우측에 자연석으로 쌓은 2~3m 높이 천생산성의 북문이 38선 탱크 방어벽처럼 견고하게 비탈에 비켜 자리하고 있다. 성문 아래쪽에 붕괴된 성벽 보수공사로 인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표지가 가로막고 있어 아쉽다. 산성 정상부에서 시작된 가파른 비탈은 북문에서 가지런히 놓인 돌계단을 한참 더 내려와야 멎으며 평탄해진다.


이정표가 앞쪽으로 장천, 우측으로 천생사, 좌측으로 황상동 등로를 안내한다. 직진하면 평탄한 능선은 좌우로 병풍바위 암벽과 가파른 사면을 끼고 평탄하게 500여 미터를 더 이어지다가, 통신 바위에서 북서쪽으로 고도를 낮추며 구미시 금전동과 장천면의 경계로  내려설 것이다.


다른 두 길을 버리고 좌측 산성지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길로 방향을 잡았다. 가장 짧은 산행 코스라는 말 그대로 산행 시작 2시간 만에 천생산성 위를 가로질러 하산길로 접어든 것이다. 능선길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와 파편은 산성 부근에 누대 등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해준다. 큰 바윗돌과 노송이 어우러진 능선길을 걷자니 신선들이 사는 도가의 선경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아래쪽으로 길게 휘도는 능선길을 버리고 능선 좌측 아래쪽에 있는 산성지를 향해 계곡 쪽으로 난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골은 깊고 숲은 우거져 날이 조금더 어두워지면 두려움이 엄습해 올 것 같은 분위기다. 산성지 위쪽 계곡으로 내려설 무렵 무성한 잡풀을 뒤집어쓴 봉분 뒤로 저무는 태양 빛이 쏟아져 비친다.


발을 재촉하여 산성지로 내려서니, 좁고 깊은 골 아래 저 멀리 지는 해를 등지고 하늘과 높이 등성이를 맞댄 금오산이 신비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천생산 산정에서의 일몰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금오산 능선 너머 어린 광채로는 저녁놀이 얼마나 찬란할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어느 날 아도화상은 부처님 얼굴을 닮은 능선 위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金烏山)이라고 이름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저녁노을은 문득 떨어지기 직전의 능소화보다도 훨씬 더 환하게 피어올라 서천(西天)을 온통 사지르더니, 급기야 그 무슨 뜨거운 불꽃처럼 온 천지간을 활활 태웠다."

_이종문의 <구미 여헌 장현광 종가(宗家)> 中

천생산 쪽에서 바라본 금오산의 저녁놀(@photo: 구미시청)

검성지 생태공원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서 땀을 씻고 귀로에 올랐다. 약목-선산로를 따라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로 들어서기까지, 낙동강 좌우로 금오산에서 뻗어 내린 긴 능선과 다봉산, 북봉산, 꺼먼재산, 접성산, 봉화산, 베틀산, 냉산, 청화산, 비봉산, 형제봉 등 높고 낮은 뭇 산들이 차창을 스쳐 지난다.   


해 질 녘 비췻빛 하늘을 배경으로 또렷이 윤곽을 드러낸 그 산들의 능선은 늙은 부처, 젊은 부처, 얘기 부처, 길게 전신을 드러내고 누운 부처 등 하나같이 모두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 마치 광활한 산천을 절집 삼아 천불상을 조성해 놓은 듯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아도화상이 천생산 북쪽 40여 리 지점, 냉산 아래 신라시대 최초의 사찰 도리사(桃李寺)를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금오산의 낮은 산자락 위로 초승달이 가냘픈 얼굴을 내밀었다. 초승달은 벼들이 누렇게 익어갈 너른 상주 벌판을 지나고, 문경새재 첩첩산중 아래 뚫린 터널을 빠져나가고, 괴산과 충주의 경계를 지날 때까지 높은 산과 능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며, 숨바꼭질하듯 고단한 밤길을 외롭지 않게 동행해 주었다. 감곡을 지날 무렵 초승달은 능선 아래로 사라지며 작별을 고했다.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스피커에서 반복 재생되는 김광석의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따라 부르며 고속도로의 긴 불빛 행렬에 속도를 맞추 어둠 속을 달린다. 목적지로 설정해 놓은 '집'이 가까워 왔고, 내 가슴 속에는 벌써 만월이 된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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