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산 기행

정선 가리왕산 아라리

인산(仁山) 2024. 8. 23. 11:16

진부 IC로 내려섰다. 가리왕산을 찾아가는 길 진부면 산뜻한 마을을 지나 오대천을 따라 난 59번 도로 옆 산기슭으로 밭뙈기들이 스쳐 지난다.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들머리 장구목이가 해발 400여 미터니 해발 1561미터 정상까지 약 1100미터를 올라야 한다'는 산행대장의 말에 자못 긴장이 된다.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장구목이골 입구 산행 들머리에 도착했다.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면 그리고 평창군 진부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옛 맥국(貊國) 갈왕(葛王 또는 加里王)이 피난하여 성을 쌓고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국도 옆 오대천은 이십 여 리를 더 달려서 정선 여량에서 출발한 조양강에 안겨 들 것이다. 그 조양강은 지천을 끌어안으며 동강으로,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면서 다시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꿀 것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정선아리랑 中>

정선군은 4개 읍과 5개 면을 가진 아리랑의 고장이다.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7~800여 수가 된다고 한다. 정선 고한읍은 작은 아버지 가족에게 슬픔과 절망의 아리랑을 아로새긴 가족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들머리 장구목이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이 도로변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고 스틱을 펴는 등 저마다 산행 채비에 바쁘다. 산행은 장구목이~임도~ 정상~마항치 삼거리~어은골 임도~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10여 km 거리 6시간 코스가 될 것이다.

산행 들머리 오대천으로 흘러드는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산객들은 초입부터 수풀이 우거진 원시의 초록빛 속으로 빨려 들 듯 바삐 발길을 옮긴다.

계곡 옆 축대처럼 돌로 잘 쌓은 길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진 녹음 사이로 가파른 계곡 바윗돌에 부딪혀 부서지는 흰 물줄기가 언듯언듯 보이고 크고 작은 소(沼)도 군데군데 보인다. 가리왕산은 계곡의 저 많은 물을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덧 몸에 땀이 배이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산길 아래 계곡으로 길이 트인 몇몇 곳 멋진 폭포 앞에서 산객들이 발길을 멈추곤 한다. 계곡 폭포 앞에 내려서니 서늘한 기운이 달아오른 몸을 금세라도 식혀줄 듯싶다.

높고 습한 계곡이라 이끼류가 바위를 덮었고 산길 주변 곳곳에 외계 식물처럼 보이는 관중(貫衆)이 무성하다.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의 '종(種)-속(屬)-과(科)-목(目)-강(綱)-문(門)-계(界)' 분류체계에 따르면, 고사리목 면마과 여러해살이 양치식물인 관중은 '고사리과(科)'가 아니라 '고사리목(目)'의 식물이다. 그렇다면 기실 우리가 흔히 듣는 '한 통속이다.'라는 말과 '별종이다.'라는 말도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세차고 우렁찬 계곡 물소리는 느리고 애처로운 정선아리랑 곡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기점 2.5km쯤에서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달리 계곡 물소리는 멀어지며 잦아들었다.

해발 1천 미터 지점 가리왕산 허리를 구불구불 길게 휘도는 임도로 올라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임도로 올라선 산객들이 긴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남자들과 나란히 또는 남자들보다 더 가뿐하게 비탈진 산기슭을 오르는 예순 전후로 보이는 여성 산객들이 대단해 보인다.

 

어떤 산객은 다시 오지 않겠다며 치를 떨었고, 이번이 세 번째라는 어떤 산객은 같은 산이지만 올 때마다 산행이 색다르다는 소회다. 맥국의 가리왕이 이 산 정상 쪽으로 몸을 숨겼다면 쫓아오던 적군들도 도중에 기진하여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서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산세가 가파르고 험하다.

 

들머리로부터 2.6km 임도에서 정상까지 본격적으로 급한 경사를 치고 오르는 1.6km가 기다리고 있다. 무미하고 건조해 보일 듯했던 힘든 길 군데군데 기품 있는 주목과 수수한 모습의 들꽃들이 눈길을 끌며 순간순간 밀려드는 고통을 잠깐씩 잊게 해 준다.

 

동행한 기산(基山, 친구의 山號)이 나중에 찾아서 알려준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금괭이눈, 병꽃나무, 벌개동굴, 물참대 등 산행 중 눈길을 잡던 꽃들은 어디선가 본 듯 하지만 이름은 생소하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 가리왕산 기슭은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영겁의 바다처럼 평온하고 고요하다.


지루한 가파른 비탈길이 끝나고 정상과 중봉을 잇는 능선으로 올라섰다. 낮은 관목 사이로 난 능선길이 200여 미터 거리 해발 1561미터 정상으로 인도한다.


가리왕산은 '아라리'의 고장 정선의 지붕으로 불리는데, 정상 표지석 옆에 둥근 돌탑이 서있는 상봉 망운대는 가리왕산 팔경 중 제1경이라고 한다.


거칠 것 없이 툭 인 너른 정상은 산행 내내 특별한 조망이 없어 갑갑하던 시야를 시원스레 열어준다. 온몸에 부딪히는 바람은 서늘하고 가슴 깊이 들이쉬는 공기는 상쾌하다.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치악산 등과 함께 동해가 보인다는 정상에서 대강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정상 북서쪽에 중왕산이 자리하고 반대편으로는 중봉과 하봉이 이어진다. 산행 버스로 떠나는 당일치기 원정 산행은 중봉과 하봉을 거쳐가는 종주산행을 허락하질 않는다.

 

하봉에서 숙암리로 내리 뻗은 계곡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건설된 표고차 825미터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길게 누워 있을 것이다. 환경파괴 논란 속에 건설된 후 올림픽이 끝나면 복원한다는 애초의 계획이 흐지부지 되었고 그대로 유지해도 경제성도 낮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을 박새 군락이 융단을 깐 모습이 천상에서나 볼 수 있는 화원처럼 환상적이다. 이때쯤엔 산기슭 곳곳에 취나물, 두릅 등 수십 종의 산나물이 돋아나는 자생지라고 하니 시간만 허락된다면 당장이라도 산기슭 깊숙이 뛰어들어 보고픈 마음이다.

 

마항치 삼거리를 지나 어은골 임도 쪽으로 내려간다. 해발 천백쯤은 만개한 철쭉 천지를 산새들이 노랫소리로 채웠다. 대제학을 지냈다는 동래 정공의 묘는 간 곳 없이 묘비만 남았고, 그 아래 옆면에 '1941年 9月 7日 卒'이라 적힌 묘비석은 산마늘로 뒤덮인 묘역과 봉분 옆을 외로이 지키고 서있다.


해발 천 고지 아래위를 가르는 상천암 바위를 지나고 어은골 임도로 내려서서 잠시 숨을 돌린다. 임도 아래 휴양림 쪽으로 내려서는 길 자칫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영락없이 굴러 떨어질 듯 가파른 경사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청옥산, 중왕산, 상원산, 옥갑산, 다락산, 사달산, 상정바위산 등 고도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은 얼마나 많은 골과 고개를 품고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다. 벽파령, 성마령, 마전령, 마항치 등 가리왕산 능선을 넘는 여러 고개들도 느리고 서글픈 정선아리랑 곡조처럼 수많은 애환을 품고 있을 것이다.

 

억새 바다가 출렁이던 가을의 민둥산, 장쾌한 설경을 펼치던 겨울의 태백산 등 정선 부근으로의 산행 때처럼 산행 내내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잊고 있던 가슴속 응어리를 누르고 다독였다.


한바탕 내린 소나기로 붉은 황톳물이 신작로 옆 도랑 둑을 할퀴듯 넘쳐흐르던 69년 초여름, 정선 탄광촌을 출발했을 '도락꾸'가 삼촌 상여를 싣고 먼길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던 모습은 다섯 살 아이 눈에도 생경했던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질 않는다.

 

지리하고 가파른 하산길 해발 800쯤에서 '이끼계곡'이라 불리는 회동계곡 물소리가 함께하자며 산객을 따라온다. 발밑 너덜길은 발바닥 밑에서 건들거리고 몸은 자꾸 좌우로 비틀거린다.

 

주봉 쪽 계곡은 중봉 쪽 계곡들과 두어 곳에서 서로 합쳐지며 위세를 높여 우렁찬 소리를 계곡 가득히 채운다. 어은골 입구 용탄천 위로 놓인 심마니교를 건너며 가리왕산 품속을 빠져나왔다. 산객에게 무슨 한이나 애환이 있으랴마는 아라리 한 곡조를 가파르고 힘겹던 가리왕산 산행에 부쳐 본다.

 

가리왕산 철쭉은 봄마다 피는데
한 번 간 우리 님 돌아올 날 기약 없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가리왕산 폭포야 어찌 그리 우느냐
우리네 인생도 눈물 반 한숨 반이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_인산 <가리왕산 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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