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라 걷기

내동마을 연꽃과 와우정사 불심

인산(仁山) 2024. 9. 3. 09:18

용인특례시 처인구 내동마을의 연꽃단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남시 경계를 지나 용인시 북동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57번 지방도를 따라 문수산과 칠봉산 사이 능선을 가르는 곱등고개를 넘었다. 경기옛길 영남길 제5구간인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길' 탐방 시 내동마을 법륜사 곱등고개 등을 거쳐 지나갔던 5년 전 초봄의 기억이 또렷하다.

 

"팔월이면 연꽃이 만발한다는 내동마을 앞 너른 논에 반쯤 녹은 살얼음이 바람에 흔들린다. 물이 그득한 논, 마른 연 줄기 사이와 논두렁에서 야생 오리들이 물질을 하거나 앉아서 햇볕을 즐기고 있다. 이방인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가끔씩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볼만하다. 내동마을은 그야말로 야생오리들의 낙원이다.

 

마을 표지판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 늙은 버들 한그루가 여인이 긴 머리칼을 빗질하듯 가느다란 가지를 길게 널어 뜨리고 서있다. 파릇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뒤에서 울려 퍼지는 내동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용인농업기술센터와 농촌테마파크 앞을 지나 도로 오른편 문수산 자락에 안긴 법륜사로 들어섰다."_<마술피리의 옛길 둘레길 기행> 中 https://brunch.co.kr/@laojang/72

 

06화 은이 성지와 문수산 마애불길

영남길 제6구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 오랜만에 하늘이 본래의 제 색깔을 찾은 맑은 날이다. 야탑에서 7:35발 진천행 시외버스에 올라 백암 터미널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

brunch.co.kr

 

그때와 달리 칠월은 연꽃이 한창 피고 지는 철이라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색 연잎으로 뒤덮인 드넓은 연꽃단지는 잔물결이 이는 바다를 연상케 한다. 논두렁에 깔린 야자수 매트와 곳곳에 자리한 원두막은 입소문을 타고 몰려든 탐방객들이 편안하게 연꽃을 감상하고 따가운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한 마을 주민들의 배려일 것이다.

 

연꽃단지는 키가 크고 작은 것, 흰색 연홍색 진홍색 등 꽃 색깔 종류에 따라 논두렁으로 나뉘어 자리하고 있다. 연꽃은 첫날 절반만 피어서 오전 중에 오므라들고, 이튿날 가장 화려한 모습과 아름다운 향기로 피어나고, 사흗날에 꽃잎을 피웠다가 오전 중에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꽃잎을 활짝 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연꽃과 대롱 끝에 영근 꽃봉오리나 꽃잎을 다 떨군 채 연밥을 달고 있는 개체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싯다르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을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랐다는데서 연꽃은 불교의 꽃이 되었다. 당나라 때의 스님 법장(法藏; 643~712)은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서 연꽃이 향(香), 결(潔), 청(淸), 정(淨)의 네 가지 덕을 가졌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한편, 성리학 창시자로 알려진 북송의 주돈이(1017-1073)도 연꽃을 무척이나 사랑했나 보다. 그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꽃 가운데 은일자(隱逸者)인 국화나 부귀자(富貴者)인 모란 보다 꽃 가운데 군자인 연꽃을 사랑한다고 노래했다.

 

"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하노니,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넓고 밖은 곧으며, 덩굴이나 가지도 없고,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이다."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 주돈이, 애련설(愛蓮說) 中 -

 

연꽃단지 지척에 용인농촌테마파크가 자리한다. 경관농업단지, 곤충체험관, 관상동물원, 다목적교육관, 들꽃광장, 수생관찰연못, 꽃과 바람의 정원, 무궁화동산, 잔디광장, 암석원, 잣나무숲, 초가집, 숲 속도서관, 원두막, 평상 등 다양한 시설물과 체험 프로그램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무더위를 피해 테마파크 초입에 자리한 농경문화전시관으로 들어가서 땀을 식히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한여름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늦더위 있다 해도 계절을 속일 소냐, 빗줄기 가늘어지고 바람도 다르구나."

_<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中 7 월령가

농경문화전시관의 김홍도 作 <단원풍속화첩> 중 '타작' 모사본

연꽃마을을 뒤로하고 미리 검색해 두었던 부근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 생선가스, 화덕 피자 등의 메뉴를 갖추고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용담저수지 가에 자리한 이 식당은 옛 경양식 식당의 전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임꺽정이 죽산 칠장사로 스승을 만나러 가다가 가짜 임꺽정과 조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곱등고개에서 바라보는 용담 저수지는 舊 용인팔경 중 제3경 '용담조망(龍潭眺望)'으로 알려져 있다. 용담저수지 주변 사암리 좌항리 미평리 가재월리 등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은 용인의 대표적인 쌀인 백옥쌀이 생산되는 곡창지대라고 한다.

 

곱등고개를 다시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귀로에 와우정사(臥牛精舍)에 들렀다. 오락가락하며 물러나지 않고 주춤거리는 장마는 먹구름 사이로 언언뜻 푸른 하늘은 보여주기도 한다. 은이산 자락에 안겨 있는 와우정사는 1970년 실향민인 해월 삼장법사(속명 김해근)가 통일을 기원하며 세웠다고 한다. 사찰 입구에서 탐방객을 맞이하는 이국적 얼굴의 거대한 황금빛 불두상(佛頭像)이 인상적이다.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산인 와우정사 경내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8만 5천 근의 황동으로 10년에 걸쳐 조성했다는 대웅보전의 장육오존불,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길이 12m의 와불, 무게 12톤의 통일의 종, 우리나라 최대 청동미륵반가사유상, 석조약사여래불, 세계 최대 유일의 석가 불고행상(佛苦行像), 세계 각국 성지에서 가져온 돌로 쌓았다는 '통일의 돌탑'을 비롯해서 인도·미얀마·스리랑카·중국·태국 등에서 모셔온 불상 3천 여점 등 이색적인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와불전에서 불고행상을 모신 대각전(大覺殿)으로 오르는 길 우측 담벼락의 태몽, 탄생, 생로병사, 출가, 고행, 성도, 설법, 열반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폭 그림에 압축해서 담은 팔상도(八相圖)가 인상적이다. 1998년 4월에 불화기능보유자 김종욱, 배인법, 배수현 3인이 그렸다고 작자를 명기해 놓았다.

 

마왕 마라 파피야스는 성도한 싯다르타를 유혹하려 딸 셋(다섯)을 보내지만, 싯다르타는 오만, 탐욕, 무지, 두려움, 욕망의 화신인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림 속 마왕의 딸들은 아름다운 용모의 젊은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녀들이 하나씩 든 손거울에는 늙고 추한 노파의 얼굴이 비쳐 있다.

 

그 장면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해골, 모래시계, 썩은 과일, 촛불 등의 상징물로써 그림, 조각,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의 주제가 되었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떠오르게 하며, 한때의 젊음은 곧 지나가니 유한한 삶을 덧없이 보내지 말라는 경고의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하다.

 

와불전과 대웅보전 등에 불자들이 정성스레 올리는 절에는 간절한 소망이 엿보이고, 대웅보전 옆 너른 터에 줄지어 선 십이지신 석상들은 하나같이 머리와 팔 등에 복(福)을 갈구하며 바친 복전 지폐를 이거나 안고 서있다.

 

경내를 한 바퀴 훑어보고 붉은 입술에 금빛으로 빛나는 불두상에 눈길을 빼앗기며 와우정사를 나섰다. 갑자기 몰려와 하늘을 덮으며 빗줄기를 떨구기 시작하는 짙은 먹구름에 쫓기듯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도깨비 소나기에 한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던 윈도브러시가 느릿느릿 속도를 늦추었다. 내동마을에서 연꽃의 바다를 유영하고 와우정사의 이국적 정취를 만끽한 호젓한 한나절이었다. 팔월이 코앞이니 지루하던 장마도 곧 물러날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