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이다. 직장 산악회에서 계획한 가야산 산행을 위해 서면역 부근 버스 출발장소로 향했다. 그저께 폭음 후유증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몸이 찌뿌듯하다. 온천천엔 아침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발걸음 느긋하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빽빽한 평시와 달리 전철 안도 여유롭다.
OB 대여섯 분 포함 20여 명을 태운 노란색 25인승 버스가 8시경 출발했다. 쾌청하던 하늘이 남해고속도로 진영 IC 부근에 들어서자 안개가 자욱이 밀려오며 왼편 정병산을 온전히 덮었다. 다행히 천주산과 작대산을 관통하는 창원터널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자취를 감췄다.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안개에 '가야산 모습 제대로 볼 수 있을까'하고 지레 걱정했던 마음이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원 I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서서 북쪽으로 달리다가 칠서휴게소에 내려 신선한 공기를 쐬었다. 현풍을 지날 무렵 무산되었던 지난봄 산행 목적지 대구 비슬산이 오른편 멀리에서 인사를 건넨다.
창녕군을 지나 고령 IC에서 1984년 88 올림픽 고속도로로 개통되었다가 2015년 말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이름이 바뀐 광주대구 고속도로와 33번 국도를 경유했다. 59번 국도 성산가야로로 들어선 버스는 가야산 우측 자락을 휘돌아 출발 두 시간 반 만에 들머리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도착했다.
소리길 탐방을 택해 해인사 쪽으로 향하는 몇 분을 싣고 떠난 버스를 보내고 나머지 일행은 들머리 주차장에서 스틱을 꺼내고 신발끈을 조이는 등 채비를 하고 S선배 리딩으로 몸을 풀었다.
백운리는 가야산 산행의 백미인 만물상 코스로의 최적 출발지다. 이곳 성주군 수륜면이 고향이라는 OB B선배가 산행대장을 맡아 코스를 안내하기로 했다.
대부분 예전에 가야산을 다녀왔다지만 나처럼 처음인 사람도 몇몇 있다. 처음의 설렘은 남다르겠지만 '해동 10 승지'와 '조선 8경' 중 하나를 차지하는 산이니 만큼 두 번 세 번 몇 번째가 되었건 설렘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들머리에서 가야산 정상 칠불봉과 상왕봉으로 가는 중간 기점인 서성재까지 3km는 만물상 코스와 용기골 코스 두 갈래로 나뉜다. 일행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용기골 대신 만물상 쪽 코스로 길을 잡았다.
만물상 탐방로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초입부터 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얼굴엔 땀방울이 맺힌다. 바위길 계단길 벼랑 데크길 등을 지나며 앞에 솟아 있는 기묘한 생김의 바위산을 올려다보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능선 마루 바위나 계단길에 멈추어 서면 장쾌하게 뻗어 내린 산맥들은 생동감 있고 그 사이로 펼쳐진 성주의 들판이 멀리 아득하다.
그 속을 지나올 때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만물상은 서성재로 난 능선 계단길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온전히 한눈에 들어온다. 우후죽순처럼 무질서한 듯 조화롭게 솟은 바위들의 숲 만물상 모습은 5개 단에 25개 산을 정치하게 그려낸 부여 능산리 백제 금동대향로를 연상케 한다.
서성재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끊어질 듯 끊이지 않고 봉우리 몇 개를 치켜세우며 상왕봉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공룡능선이 만물상과 다투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시조 형제를 낳았다는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가 하늘신 이비가지와 부부의 연을 맺은 곳이라는 상아덤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진 봉우리로 만물상을 비롯해서 가야산의 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 한다.
성주군 수륜면과 합천군 가야면을 잇는 고개 서성재는 옛 가야산성의 서문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상아덤까지 뒤따라오며 자꾸 시선을 붙잡던 만물상을 뿌리치고 이마 위로 또렷한 칠불봉과 상왕봉을 바라보며 가파르게 치달아 오르던 걸음을 잠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서성재 나무 그늘 공터에 자리를 펴고 앉아 배낭을 열고 허기를 채웠다. N선배가 챙겨 온 사과는 달콤하고 S선배의 새콤하고 향긋한 밀양 얼음골 사과 맛은 잊을 수 없을 듯하다.
해발 1100미터가 넘는 서성재에서 칠불봉과 상왕봉까지는 각각 1.2km 1.4km로 산죽이 덮인 능선길과 바위틈을 지나고 암벽길을 오르면 멀게만 느껴지던 해발 1433미터 칠불봉 암봉이 좌측 벼랑으로 계단길을 열어놓고 산객을 맞아준다.
칠불봉은 가야산 산신의 둘째 아들이자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해서 낳았다는 왕자 10명 중 일곱이 그 봉우리 아래서 3년간 수도 끝에 생불이 되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우두봉으로도 불리는 해발 1430미터 상왕봉은 칠불봉과 원래 하나였다가 갈라져 뚝 떨어져 나앉은 듯 지척에 솟아있다. 정상부에 거대한 암반이 불쑥 솟구쳐 있는 모습이나 바위 비탈에 서있는 정상석이 관악산 연주봉과 흡사해 보인다. 택리지에서 가야산 기암괴봉이 불꽃을 닮았다 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부르기도 했다니 얼핏 '남녘의 관악산이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왕봉에서 내려서는 바윗길은 한동안 비늘이 박힌 공룡의 등줄기 같은 산줄기와 그 너머 멀리 겹겹이 펼쳐진 산맥의 장쾌한 장면을 선사하다가 이내 곧 산죽이 무성한 완만한 경사의 숲길로 바뀌어 해인사까지 길게 이어진다. 숲에 햇살이 잠긴 그 길은 혼자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산책로 같다.
해발 800여 미터 부근에서 함께 내려가자고 옆으로 다가서는 계곡의 맑은 물에 손을 담그고 이마의 땀을 씻으니 한결 기운이 돋는다.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길이 해인사로 안내하며 작별을 고한다. 좌측 비탈을 올라 해인사 경내로 들어서니 범종각이 맞이한다. 흔히 산정에서 내려오는 산행자들이 들르는 사찰은 입구가 따로 없고 참배객들의 출입구인 일주문과 해탈문은 으레 출구가 되기 마련이다.
구광루 대적광전 비로전 장경판전 조사전 명부전 관음전 등을 합장하며 차례로 둘러보았다. 장경판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팔만대장경판 모습이 경이롭다. 해탈문과 일주문 앞 높은 계단을 내려섰다.
어느 해인가 여름과 겨울 이곳 해인사를 찾았을 시인, 그가 들었다던 독경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매화와 미소 머금은 노승도 자취가 묘연한데 나들이객들 발길은 번잡하게 오간다.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伽倻山)
독경(讀經)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瑞雪)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 봉오리.
눈 맞은
해인사(海印寺)
열 두 암자(庵子)를
오늘은
두루 한 겨울
면벽(面璧)한 노승(老僧) 눈매에
미소가 돌아.
<山, 1975. 김광림>
약속된 하산 시간에 쫓겨 서둘러 해탈문과 일주문 앞 높은 계단을 내려서는 발길이 아쉽기만 하다.
산 야채와 약초를 늘어놓은 가게가 줄지어선 사하촌에는 투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고, 건너편 가야산 자락 중턱엔 해 그림자가 걸렸다.
산행을 마치며, 눈앞 비경에 취해서 정작에 가야산이 간직하고 있을 많은 얘기들은 하나도 제대로 귀 기울여 보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망국의 한을 안고 이곳에서 세상을 등진 최치원,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라 했던 정구, "다생(多生)을 고화(膏火) 속에 괴로워하던 것이 부끄럽다"던 강희맹 등 수많은 명유고승들이 가야산을 찾아왔다고 하지 않던가. '소리길' 탐방팀은 우리 산행팀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정작 옛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호젓하게 소리길을 걸었을 K선배 등이 더 부러웠다.
녹록지 않았지만 특별했던 가야산 산행과 그 끝에 들른 해인사를 뒤로하니 마음에 아쉬움이 이는데, 버스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 무심히 가야산 품속을 서둘러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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