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내 지친 어깨를 떠미네
새벽에 집을 나섰다. 하늘에 하현달이 잔잔한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돛단배처럼 쓸쓸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로를 따라 촘촘히 들어선 잎이 무성한 벚나무 가로수 숲 너머로 머리 부분만 내민 고층 아파트는 출항을 준비하는 군함같이 늠름하다.
지하철 분당선이 지나고 8호선의 시발역인 모란에서 8호선을 탔다. 양쪽 창 가로 놓인 벤치처럼 긴 좌석 네 모퉁이는 젊잔이 들이 차지했고 가운데 부분은 덩그러니 비었다. 단대오거리역 산성역 등 성남 구 도심을 지나 가락 잠실역으로 빠져나오면서 헐렁하게 비었던 객실은 금세 채워졌다.
구의강변역에서 전철을 내려 길 건너편 동서울버스터미널 건물로 들어서니 7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늘 산행을 제의한 친구 M이 예매해둔 한계령행 승차권을 셋이서 하나씩 나눠가졌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인제 원통 한계령 오색 양양에서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주며 낙산을 최종 목적지로 한다.
우리처럼 등산배낭을 짊어진 사람을 여럿 포함해서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는 7시 5분 전 터미널을 출발했다. 옆자리 H와 잠시 산행코스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가 싶었는데 밀려오는 꿀 같은 단잠에 고개를 몇 번이고 뚝뚝 떨구었다. 버스는 라이딩족 몇 명을 인제에서 내려주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원통으로 들어섰다.
원통 시외버스터미널은 외출이나 휴가를 얻은 세련된 군복 차림의 젊은 군병들로 가득하다. 원통 터미널에서 10여 분간 정차 후 설악산 남쪽으로 휘돌아 난 한계령을 넘는 44번 국도로 들어섰다. 고개를 젖혀 차창밖을 내다보니 첩첩산중 동양화 병풍 속으로 들어선 듯 설악은 수려한 자태를 펼쳐놓았다.
오늘 산행은 한계령을 출발하여 한계령 갈림길, 귀때기청봉, 대승령을 거쳐 대승폭포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 기점 한계령 휴게소에서 설악루까지 콘크리트로 놓인 계단을 올라 등산화 끈을 조이고 스틱을 펴며 등산 채비를 한다. 서북능선 중간 지점인 한계령 갈림길로 오르는 길은 간간이 휴식하기 좋은 짧은 능선을 낀 2km여의 가파른 직선 코스다.
여느 산행과 마찬가지로 그 초입은 근육과 뼈, 호흡과 걸음걸이, 어깨와 짊어진 배낭이 서로 자리를 잡으며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으로 본격적인 산행에 대한 설렘과 함께 잠시나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산행의 고통은 온전히 스스로가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그 고통 뒤에 찾아올 희열도 혼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권리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고 다른 이의 수고나 희열을 가로챌 수도 없다. 이런 산행의 룰은 누구의 눈에나 다 보이지만 애써 무시하며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편법과 억지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사회의 룰과는 다르다. 이전투구와 탐욕이 넘치는 세상에서, 실현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인간과 만물의 본성이자 최고의 품덕을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찾은 노자야말로 너무 순진했던 위인이거나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 만고의 기인이었다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파른 길이 익숙해지고 능선의 시원한 바람이 간절해질 무렵 해발 1300미터가 넘는 한계령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곳엔 벌써 군데군데 산객들이 올라와 삼삼오오 앉거나 서서 숨을 고르고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산행을 준비한다.
한계령 고개에서 이곳까지 2.3km는 급경사 오르막 길이었고, 여기서 오른쪽 대청봉까지 6km 좌로 귀때기청봉까지 1.6km 대승령까지 7.7km는 오르내리는 능선 길이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향하는 대청 쪽 반대인 대승령 쪽으로 방향을 잡고 귀때기청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귀때기청은 자기가 제일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 중청 소청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귀때기청은 서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대청 중청 소청과는 달리 의붓자식처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지만 여엿한 '청(靑)'자 돌림 설악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다. 여느 산과는 달리 설악산 산길은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다. 그것은 한라 지리 등과 함께 명산으로 칭송받는 산답게 높고 가파를 뿐 아니라 귀때기청으로 난 너덜 바윗길처럼 예상 밖의 장애물들이 곳곳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를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소청에서 백담사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용아장성, 이름처럼 용의 어금니가 능선에 드문드문 박힌듯한 모습의 웅장한 능선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다. 서북능선은 자신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려심 깊은 존재다. M이 스틱을 들어 '봉정암'이라며 가리키는 쪽을 보니 소청 바로 아래 능선에 안긴 그 모습은 멀고도 희미하다.
여름 산행의 번거로운 적 가운데 하나는 쉼 없이 눈으로 비집고 흘러내리는 땀과 목을 태울듯한 갈증이다. 사람 키 보다 낮게 자란 관목과 진달래로 덮여 강한 햇빛을 피할 숲이 아쉬운 산행 길에 산불처럼 밀려오는 갈증을 생수로 달랬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들은 척박하고 힘겨운 환경 탓인지 살아서의 명을 다하지 못한 채 하늘을 보금자리 삼아 곳곳에 화석처럼 우뚝 서서 죽어서의 삶을 누리고 있다.
테트라 포터처럼 산정에서 아래로 길게 흩어져 곳곳에 깔린 너덜바위를 타고 넘으며 해발 1577미터 귀때기청에 닿았다. 정상을 알리는 귀때기청 이정표를 지나 대승령까지는 바위 너덜길과 흙길, 내리막과 오르막 길이 번갈아 나오는 지루한 길이다. 그 지루함을 바위틈이나 숲 사이 나무들 사이에 낯선 야행화들이 간간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며 덜어준다.
지나온 귀때기청이 뒤로 저만치 위로 보이는 고개 그늘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계란, 주먹밥, 즉석 비빔밥, 샌드위치, 과일 등 각자 배낭에 챙겨 온 음식들을 꺼내 놓고 요기를 했다. 일행은 산행 출발 전에 예상했던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 쪽으로 내려가는 온전한 코스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승령이 빨리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중간에 산 아래로 내려가는 탈출구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고개가 아니라 능선에서 조금 솟은 모습의 봉우리 대승령(大勝嶺)은 해발 1210미터다. 고개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이곳은 대승골, 남교리, 장수대, 귀때기청 등 네 방향으로 갈리는 기점이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난 2.7km 하산길은 고도 차이 약 700미터로 가파른데 넓적하고 큰 돌을 계단처럼 깔아 다듬어 놓아 무릎에 무리가 되긴 해도 걷기는 한결 수월하다.
가져온 생수가 바닥이 나고 차가운 냉수 한 모금이 간절하다. 양 손에 물이 가득 담긴 페트병을 들고 오르는 젊은 산객은 바로 아래에 약수터가 있다고 했는데 하산길 중간쯤에 나타난 계곡에 드러난 바위 사이로 가는 물줄기가 보일 듯 말듯하고 약수터는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더 내려오면 계곡은 수량이 제법 늘었고 산객 몇몇이 계곡 물에 손을 담그고 땀을 씻어내고 있다. 대전에서 산행 버스로 왔다는 건장해 봬는 젊은 산객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몸을 누이며 저번보다 짧은 이번 산행이 유난히 힘들었다고 푸념한다.
대승폭포는 명색이 폭포라는 듯 가늘지만 긴 물줄기를 높은 절벽 위에서 계곡 아래로 늘어뜨리며 거죽만 남은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폭포 아래 길 모퉁이에 여성 둘이 자리를 틀고 앉아 페트병에서 종이컵에 물을 따라 권한다. 십이선녀탕 계곡은 능선 반대편인데 길을 잘못 든 선녀 둘이 이곳에 앉아 갈증에 지친 산객에게 호의를 베푸는 듯하여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다.
대승폭포에서 44번 국도 장수대 휴게소로 내려가는 산행의 마무리 길은 급한 사면을 따라 놓여 오금이 저린 가파른 철제 계단으로 국도 너머로 가리봉의 황홀한 모습을 선사한다. 날머리로 나서며 높은 봉과 깊은 계곡에 수많은 비경을 품고 있는 설악의 단면만을 살짝 엿본 짧은 산행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장수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속초에서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와서 동서울 고양 춘천 원주 전주 등으로 가는 버스가 들르는 원통 버스터미널로 왔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터미널엔 면회를 온 연인과 작별을 고하거나 귀대하려는 젊은 병사들이 오가고 우리 일행은 각각 차례로 고양 동서울 성남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