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산 기행

팔공산, 단풍의 노래

인산(仁山) 2024. 9. 12. 10:16

밤길을 달려 대구로 내려갔다. 고속버스는 강릉에서 청량리를 향해 밤새 달리던 비둘기호의 그 막막하고 처량했던 대책 없는 낭만조차 없다. 동대구역 옆 베이스캠프 L모텔에서 친구들을 만나 잠시 눈을 붙였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부근 동대구역 지하도 정류장은 갓바위나 파계사로 가는 버스가 거쳐가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서 부산을 떠는 친구들과 컵라면 등으로 간소하게 아침을 대신했다. 정류장에는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사람들이 서너 명 눈에 띈다. 정류장에서 5:40경 도착한 401번 첫 버스를 타고 갓바위로 출발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어둠 속을 달리다 서다 반복하며 승객을 하나둘 태우는 버스는 금세 빈 좌석 없이 만원이다.


객 대부분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고 평소처럼 첫 버스를 타는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며 얘기꽃을 피운다. 이른 새벽 일터로 나가는 걸까? 어르신들이 주말 새벽을 여는 것은 어디든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인연과 그리움'의 행로를 묻는다.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꽃이 지는 이유를~"

버스는 동구청, 금호교 위를 지나는 아양교, 대구공항, 불로동, 공산동, 능성동 등을 차례로 거쳐 40여분 만에 종점인 갓바위 정류장에 닿았다. 일출 전 산기슭의 미명은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았다. 일찍이 문을 연 슈퍼 주인아주머니는 인자한 얼굴이 가게 안 한쪽 벽에 붙은 갓바위 부처님 사진과 닮았다.

갓바위로 오르는 길 좌측으로 천막 가게들이 꼼꼼히 여며진 채 길게 줄지어 섰고 길 위엔 붉은빛 낙엽이 뒹군다. 등산로 초입 좌측에 부도 군이 늘어선 보은사를 스쳐 지났다. 노부부가 작은 트럭에 싣고 온 감을 내려서 아스팔트 길 한편에 첫 노점을 펴고 있다. 노부부의 사투리는 낯익고 큼지막한 감은 그 맛이 달콤하지 싶다.

두 능선이 합쳐져 좁아지는 곳 우측 관암사와 삼성각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다리가 팔공산으로 들어서는 산문 인양 성문처럼 지키고 서있다. 대웅전 지장전 관음전 약사전 범종각 등이 경사진 좁은 산비탈과 원래부터 일체였던 듯 군더더기 없이 조화롭다.


암사를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첫차로 도착했으니 제일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갓바위 쪽으로 난 긴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산객과 참배객들이 적지 않다. 우리 일행에 비해 사람들의 배낭은 작고 단출하다.

산행이 주목적인 우리 일행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배객들로 보인다. 예전에 듣기로 갓바위 부처님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한다. 그 앞에서 나는 무슨 소원을 풀어놓아야 할까, 내게 제일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갓바위까지 1,365개라는 계단을 힘겹게 반쯤 올랐을까,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아주머니 한 분이 인사말을 건네며 계단을 내려와서 쏜살같이 스쳐 내려간다. 어느새 갓바위 부처님께 아침 문안을 드리고 내려오나 보다.

계단길 중간쯤 너른 공터에서 젊은이들이 쪽발로 서서 다른 발을 한 손으로 잡고 빈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 따라 해 보지만 뻣뻣한 몸이 생소한 동작에 의아해한다. 몸은 굳어져도 생각만은 늘 유연했으면 좋겠다.

떤 소원을 꺼내 놓아야 하나? 수많은 돌계단을 오르는 그 길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찾도록 허락된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자대비한 부처나 중생제도의 원대한 꿈을 품은 불제자가 아닌 범부가 바라는 소원이야 건강 승진 합격 사업 성공 등 앞에 닥친 고난을 피하고 결핍을 채우는 일임은 보지 않아도 뻔할 터이다.

기실 소원은 욕심에 뿌리를 둔 욕망이라는 나무에 달린 과실이라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걷잡을 수 없이 주렁주렁 영글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많은 불만과 욕망 중에 굳이 하나만을 꺼내 놓을 필요가 있을까, 마음을 번잡하게 하는 미움 자책 욕심을 모두 다 꺼내놓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두의 답은 신새벽 높은 계단길을 힘겹게 올라 갓바위 앞에 서는 것은 마음을 괴롭히는 욕망의 보따리를 풀어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욕망의 불씨들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봄날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리 위 돌문처럼 생긴 능선 옆으로 난 계단 끝에 하늘이 트인다. 공양물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 가슴 높이 계단 위 갓바위 부처님 앞 너른 마당으로 올라섰다.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연신 무릎을 꿇고 머리와 팔이 바닥에 닿도록 온몸으로 절을 올리고 있다.

팔공산 동쪽 관봉의 암벽을 뒤로하고 크고 당당한 몸체 풍만한 얼굴에 갓을 쓴 듯 평평한 바윗돌을 머리에 인 갓바위 불상이 앉아있다. 통일신라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 좌상'이라 한다.

갓 떠올라 비치는 아침 햇살이 비 온 후 일시에 자라난 죽순처럼 검은 실루엣을 드리운 사람들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마당 가장자리 너머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산줄기들은 겹겹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 같고 하늘과 구름은 태양과 어울려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로봉 거쳐 파계사까지 산길이 곱게 단풍을 물들이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갓바위에서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갓파 종주'라는 파계사 쪽으로의 긴 산행에 접어든다. 미움, 자책, 욕망, 소망,.. 지고 왔던 마음속 무거운 짐은 갓바위 앞에 툭 던져 내려놓았다. 갓바위 비껴 좌측 능선은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갓바위 부근과는 달리 능선 너머 단풍 깔린 길은 오솔길처럼 오붓하다.

 

저만치 눈 앞에 단풍으로 붉게 물든 능선 위로 노적봉이 거대한 암봉을 드러내고 있다. 그 뒤로 멀리 팔공산의 서쪽 주능선이 머리에 낮게 깔린 흰 구름의 띠를 두르고 길게 뻗어 있다. 푸른 산죽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서 붉은 단풍과 대비를 이룬다.

 

가볍게 발을 띠며 걷는 능선길은 한동안 앞쪽보다 뒤돌아 서서 보는 풍경이 더 장관이다. 능선재로 접어들며 뒤로 돌아 갓바위와 인사를 한다. 은해봉에서 사과를 한 입 배어 물었다. 멀리 동봉 능선에 걸려 있는 신비로운 구름은 걷힐 줄 모른다. 갓바위에서 1.8km 지점 능선재는 동봉, 갓바위, 은해사로 갈리는 분기점으로 동봉까지는 5.5km다.


릉 길이 폭신한 흙 길로 바뀌었다.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도 만난다. 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에 달린 잎사귀들이지만 어떤 가지의 것은 푸르고 어떤 가지의 잎사귀는 붉게 각기 개성을 고집하고 있다.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여러 갈래 산줄기들은 깊은 골 위에 고랑처럼 솟아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든 모습은 강렬한 태양 아래 검푸른 바다에서 건져내는 다시마 줄기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 같다.

삿갓봉은 앞으로 가야 할 능선을 훤히 드러내는 기막힌 조망처다. 멋진 풍경에 황홀해하는 눈과 함께 귀로 낙엽 부서지는 소리, 흙 밟는 소리, 바람 소리를 나직이 음미하며 걷다가 동봉에서 넘어온다는 산객 한 분을 만났다. 안개와 바람으로 추운 그쪽에 비해서 이쪽은 봄날 같다고 한다.

도마재에 서있는 안내지도를 보니 가야 할 길이 온 길보다 더 길다. 지나는 능선 부근 곳곳에 선돌처럼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 노적봉을 비롯해서 험한 바위 절벽이 가로막은 능선을 발치에서 올려다보며 좌우로 우회했다. '많은 길을 돌아다녔지만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노래 <마이웨이> 가사로 위로를 삼을까.

동봉 못 미쳐서 웬만한 겨울산행 때 못지않게 바람이 매섭다. 많은 산객들이 동봉 정상 주위 여기저기 바위 아래에서 찬 북서풍을 등지고 앉아 휴식을 취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눈앞의 장관에 취해 있다.


팔공산의 최고봉 해발 1193미터 비로봉은 동봉과 지척이다. 동봉 아래 서쪽을 바라보고 선 6미터 높이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인상적이다. 비로봉 정상 옆에 통신용 철탑들은 부자연스러운 듯 완만한 능선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참배객들이 대부분인 갓바위 쪽과는 달리 이쪽은 산길과 둘러앉기 좋은 공터가 등산객들로 붐빈다.

비로봉에서 서봉 쪽 길을 찾아 두어 번 오르내리다가 낙타봉 쪽으로 내려와서 정상코스를 찾아 접어들었다. 등산로를 조금 벗어난 곳 비로봉 기슭 너른 터로 거슬러 올라  암벽에 양각된 마애 약사여래좌상을 둘러보았다.

서봉에 못 미쳐 전망 좋은 봉우리의 너른 바위에 앉아 배낭 열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오도재를 지나 서봉으로 가는 가파른 능선에 놓인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비로봉과 동봉이 장관을 펼친다. 갖가지 모양새의 바위들로 덮인 동봉은 흡사 가야산 서성재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뒤돌아본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비로봉 동쪽의 동봉에 구색 맞추기 격으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서봉은 동봉에 비해 낮고 별다른 특색도 없다. 많은 산객들은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동서봉과 가깝고 오르기가 용이한 동화사나 수태골을 산행기점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거워진 다리와 지끈거리는 발바닥을 산행이 절반을 넘어섰다고 다독이며 다시 파계재 쪽으로 길을 잡았다. 거칠고 거대한 암반이 성채처럼 늘어선 병풍재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가마 바위봉과 상여바위봉을 우측 아래로 우회한다.


계재로 가는 칼날 능선이라 불리는 능선은 폭이 좁고 곳곳에 바위가 숲처럼 솟아 진행이 더디다. 능선을 넘는 찬 바람이 얼굴을 마구 때리며 온몸을 서늘하게 한다. 파계봉 아래 자리하는 '파계사'의 한자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혹여 수도승이 이 길을 택해 고행을 한다면 힘이 들어 파계(破戒)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중간의 '계'를 두고 鷄 戒 溪로 각각 의견이 갈렸는데, 파계봉 정상에 자리한 한글 표지석도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 파계봉에서 파계재로의 능선은 지나온 암릉길의 노고를 위로하듯 소나무 숲에 밟기에 폭신한 흙길이다.

산길은 고도를 낮추며 계곡 너덜 바윗 길로 접어들어 인내심을 시험하며 지루하게 이어진다. 물이 마르던 계곡이 줄줄줄 소리를 내며 제법 계곡 다워지자 파계사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고목이 늘어선 지장전 쪽으로 내려섰다. 다른 세계처럼 다리 건너 계곡 저편에 자리한 극락전에 한 번 눈길을 주고 본전인 원통전과 미타전 응진전 적묵당 등 전각들을 둘러보았다.

전각 아래를 통해 파계사 본당 경내로 드는 출입문 격인 진동루(鎭洞樓) 앞 안내문을 읽으니 파계사(把溪寺)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통일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사찰로 조선왕조의 원찰이 된 파계사는 아홉 줄기로 흩어져 있는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경사진 아스팔트 길을 한참 내려와야 만나는 일주문을 나서서 다시 한참을 걸어야 오토캠핑장을 지나서 버스종점이 나온다. 단풍축제가 열리고 있는 정류장 부근엔 먹거리 노점 등이 늘어섰고 간이 무대 위 가수는 한산한 관객에 개의치 않은 듯 노래에 열중한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오르며 종일토록 붉은 단풍, 늠름한 솔, 기암절벽, 사찰, 석불, 마애불, 황홀한 하늘과 구름 등과 어우러졌던 산행을 마무리한다. 단풍을 붉게 물들이며 불타오르던 태양이 노곤해진 몸을 누이려는 듯 완만히 뻗어 내린 서편 산줄기 뒤로 뉘엿뉘엿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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