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봉우리는 몇 개 일까?
오랜만에 서울 강북 쪽으로의 산행이다. 근 한 달 만에 친구들과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목적지는 북한산이다. 주말 전철 안은 평일과 달리 헐렁하다. 전철 3호선으로 환승해서 한강을 건너고 종로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등을 지나 불광역에서 내렸다.
북한산 준봉 군락 중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해발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비봉 비봉능선 문수봉 의상능선 의상봉을 거쳐 대서문 쪽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코스다.
불광역과 독바위역 중간쯤 불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면 전체 71.5km 21개 구간의 북한산 둘레길 중 '구름정원길' 구간과 교차하는 족두리봉 쪽 들머리가 나온다.
맑은 가을날 주말답게 들머리부터 남녀노소 산행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초입부터 가파른 능선은 거대한 암릉이다. 그 중간중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서있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능선 비탈을 오를수록 가까이 홍제동 안산 인왕산 남산 방화대교 한강 계양산 일산 등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향로봉과 멀찍이 떨어져 나와 봉긋 솟아있는 해발 370미터 족두리봉에 서면 시야가 사방으로 터이며 위쪽으로 연이어진 능선과 준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산 북악 백악 남산을 비롯해서 서울 외곽의 인천 계양 강화 문수 일산 고봉 등이 선명하다. 북서쪽으로 보이는 희미한 산이 '개성 송악이다. 아니다'하며 의견이 한참 오갔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에 뒤돌아보면 머리에 족두리를 쓴 듯한 족두리봉 모습이 더욱 또렷하다. 탕춘대와 구기터널 쪽 갈림길을 지나고 초소가 가로막고 있는 향로봉 절벽 코스를 휘돌아 해발 535미터 향로봉 푯말을 확인하고 능선 위쪽으로 향한다.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암봉을 좌측으로 휘돌아 뒤쪽 능선에서 아찔하게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들 틈을 엉거주춤 기어서 해발 570m 비봉에 올라섰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어 유래된 이름 비봉이다.
바위 절벽 가장자리에서 한 발짝 안쪽에 자리한 어깨 높이의 비석, 1500여 년 동안 이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석을 마주하니 경이로움과 감동이 밀려온다. 천 년 왕국 신라의 튼실한 토대를 다진 진흥왕의 위업을 기록한 채 십 수 세기 동안 서울과 한강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터이다. 똑같은 모양의 국보 제3호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단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 서유구(1764-1845)가 처음 10여 자를 판독하여 '진흥왕 순수비'라 이름했다고 한다. 그 후 1816년 7월 추사가 김경연과 함께 올라 진흥왕의 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다음 해 6월 8일 조인영과 다시 비봉에 올라 남아 있는 68자를 확인하고 비석 측면에 고증 경위를 새겨 넣었더란다.
따가운 햇볕을 마다하지 않고 한참을 머물던 비봉을 뒤로하고 사모바위로 향한다. 사모바위 바로 아래 1968년 1.21 사태 때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김신조 등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침투했을 때 21일 새벽까지 은거했던 바위굴이 있다. 바위 아래 엎드려 있는 밀랍으로 만든 게릴라들이 당시 남북 간 긴장과 반목을 얘기해 주고 있다.
사모처럼 생겼다는 거대한 사모바위는 좋은 포토존인 듯 산객들이 모여있다.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오른쪽 아래 포근히 안긴 승가사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앞쪽엔 문수봉이 기다리고 그 오른쪽에 우뚝 솟은 보현봉 정상에는 산객들 모습이 또렷하다.
암반으로 덮인 승가봉을 지나고 문수봉으로 가는 길도 여느 봉과 봉 사이와 마찬가지로 암릉을 오르고 내려가는 능선길이다. 문수봉 오르는 길 이정표에 적힌 '쉬움'과 '어려움' 중 청수동암문으로 비껴가는 '쉬움' 길을 버리고 '어려움' 쪽을 택하여 철책 가드레일이 놓인 암벽 길을 400여 미터 올랐다.
해발 727미터 문수봉은 대남문을 끼고 보현봉과 나란히 자리한다. 대남문 쪽으로 온전한 북한산성 성벽이 보이고 그 아래 기슭에 문수사가 안겨있다.
북한산성은 숙종 3년인 1711년 축조한 것으로 11.6km에 달하며 대문 6곳 암문 8개 수문 2개 병사 초소인 성랑 143개를 두었고 성 안에는 행궁을 비롯해서 수비군 주둔지 유영과 장대 각각 3개 군량창고 7개 승병 주둔지 승영 사찰 13개 등이 있었다고 한다.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청수동암문을 지나 나한봉 쪽으로 향했다.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은 하나같이 용장처럼 늠름하고 장대한 모습이다.
봉우리들 사이 암릉길 왼편 가파른 절벽 사면 너머로 족두리봉에서 문수봉까지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는 노적봉과 그 뒤로 백운대와 만경대 그 사이에 인수봉이 서로 경쟁하듯 모여서 우뚝하게 솟아 있다. 암릉길 옆 한적한 바위 위 곳곳에 등산화를 벗고 눈을 감고 누운 산객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백운대 아래 염초봉 장군봉 원효봉 등 봉우리들과 그 사이에 자리한 중흥사 노적사 대동사 법용사 국녕사 등 여러 사찰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원효봉과 마주 보며 솟은 의상봉에서 탐방센터로 난 가파르고 긴 힘든 길을 내려섰다.
족두리 향로 비 승가 문수 나한 나월 증취 용혈 용출 의상 등 숱한 준봉들을 오르내리는 내내 시시각각 장쾌한 모습을 보여주던 북한산을 뒤로하며 눈과 마음을 빼앗겼던 호사로운 산행을 마무리한다. 곧 형형색색 단풍으로 치장할 북한산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보며...